불면의 정물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불면의 정물



청람 김왕식






벽지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구석에는 오래된 사과 껍질이 마른 채 굳어 있었다. 여인은 방 한복판, 쇠 다리가 구부러진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손은 무릎 위에 얹혀 있었고, 손톱은 모두 반쯤 뜯겨 나가 있었다. 숨은 멎지 않았지만, 방 안에 산 자는 없었다.

아직 저녁도 되지 않았건만, 창문 밖엔 어둠이 먼저 들어왔다. 그것은 그림자라기보다 물처럼 스며드는 것이었고, 커튼은 찢긴 꿈처럼 바람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홉 시간째, 수조(睡阻)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눈꺼풀 아래의 동공은 점차 뒤집히고 있었다.

벽시계는 여섯 시 삼십팔 분을 가리킨 채 멈췄다. 분명히 네 번 고쳐 달았던 바늘이었고, 시계 속에는 아버지가 남긴 유리 파편이 아직 박혀 있었다. 그것은 흉기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흉기로 여긴 적은 없었다.

여인의 앞에는 한 접시의 감자가 식은 채 놓여 있었다. 물기 없는 감자였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이 아직 배고픈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감자 하나에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존재감이 투영되었다. ‘나’란 무엇인가, 그 끓이지 않은 감자처럼 의도도 없이 던져져 있는 것이 아닌가.

천장의 물 얼룩은 점점 넓어졌다. 그 얼룩은 아들을 닮았다. 사라진 지 열다섯 해, 사춘기 말기에 탑승한 열차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진 그였다. 그의 뒷모습은 그녀의 꿈속에서조차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얼룩이 입을 벌려 말했다.

“엄마, 나 기억해?”

그녀는 두 손으로 귓불을 막고, 사라진 존재에게서 도망치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눌어붙은 기름 같은 시간이었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남는, 지워지지 않는 시간의 더께였다.

그리고, 문득 방 안에 흰 거미 한 마리가 기어 들어왔다. 그 거미는 천천히 감자 접시를 타고 올라와, 여인의 손등에 닿았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들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논리한 환상이 아니라, 그 생물의 침묵이 너무나 그 아이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 식은 감자의 표면이 천천히 갈라졌다. 마치 그 안에서 어떤 생명체가 움직이는 듯, 아주 미세하게 진동하며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한 편의 기도였다.

어둠은 완전히 침투했고, 시계는 다시 고장났다.
그러나 여인은, 아주 작게 속삭였다.
마치 먼지를 향해 사죄하듯.

“네가 아니라, 내가 도망쳤던 거였구나…”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발끝은 떨렸지만, 그것은 존재가 다시 땅을 밟는 징조였다.

그녀가 지나간 바닥에는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고,
감자는 여전히 식은 채로 반쯤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으나,
그 조용함은 이제 무게가 아니라
방금 막 움직이기 시작한 삶의 심장 박동이었다.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페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