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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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사물화(mental objec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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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
그녀는 심장을 꺼내 벽난로 위에 두었다.
바로 그 벽난로, 불이 붙지 않는, 백 년 가까이 재만 쌓인 그곳.
그녀의 심장은 유리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장식품이라 불렀고,
그녀는 그 오해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심장은 실제로 유리였고, 그 안에는 매일매일의 감정이 수증기처럼 맺혔다.
기쁨은 안쪽에서 맺히는 노란 물방울이었고,
슬픔은 바깥으로 번지는 푸른 균열이었다.
사랑은 가끔 핏빛으로 일렁였지만, 그건 금세 갈라졌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 그것을 천으로 닦았다.
그러면 과거가 흐릿해졌고, 미래는 조금 투명해졌다.
그녀의 연인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는 단지 그녀가 ‘감정이 없는 여자’라 생각했다.
그녀는 욕조에서 목욕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속에서는 그녀의 몸에서 불쑥 꽃이 자라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복숭아꽃이 어깨에서 피어났고,
또 한 번은 백일홍이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그것들은 향기롭고 예뻤지만, 너무 빨리 시들었다.
그녀는 꽃이 피는 걸 두려워했다.
피어난다는 건 시든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밤이면 그녀는 귀에서 나는 달의 쥐 긁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달빛이 그녀의 과거를 벗기듯 파내는 소리였다.
가끔은 그 소리에 견디지 못해 창문을 깨뜨렸다.
그러면 창문 유리 조각 속에 그녀의 어린 시절이 깃든 얼굴이 비쳤다.
눈동자는 없고, 입은 ‘미안해’만 반복하는 입모양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 안의 슬픔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녀의 육체를 빌려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충격이었다.
그녀는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임대자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 몸을 감정들에게 세 놓기 시작했다.
분노는 등뼈 아래 방을 원했다.
질투는 양쪽 손바닥을 원했다.
절망은 발가락 끝에 눌러살며
사랑은 혀끝에 살며 때때로 말을 빌려 이별을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공간’이라 여겼다.
감정의, 기억의, 사물의 공간.
그러던 어느 겨울,
그녀는 유리 심장을 벽난로에서 꺼내 깨뜨렸다.
그 순간, 심장은 조각나지 않았다.
대신, 그 방 전체가 산산이 부서졌다.
천장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벽은 노래하듯 무너졌다.
오로지 그녀만 남았다.
허공에 떠 있는 하나의 반점처럼.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존재하는 것처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입가에는 처음 보는 감정의 이름도 모를 미소가 걸려 있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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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메타포로 피어난 상상력의 방 ― 김왕식의 「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에 대하여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객원교수
김왕식 작가의 「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은 감정과 존재, 상처와 침묵의 층위를 유리라는 메타포 속에 절묘하게 가둬낸 환상적 산문시이다. 작가는 외부와 내부의 감각을 정밀하게 배치하여, 한 여인의 내면 풍경을 투명하게, 그러나 균열로 그려낸다.
작품의 시작은 비현실적인 선언으로 독자를 붙든다. "그녀는 심장을 꺼내 벽난로 위에 두었다"는 문장은 현실의 규칙을 거스르며, 인물의 심리를 구체적 사물로 환원한다. 여인의 심장은 유리이며, 그 속에는 감정이 물리적으로 맺히고 갈라진다. 이 설정은 곧 감정이 ‘주관적 경험’이 아니라 ‘객체화된 형상’으로 드러나는 구조를 띤다. 슬픔은 푸른 균열이고, 기쁨은 노란 물방울이며, 사랑은 핏빛의 일렁임이다. 이처럼 감정의 이미지화를 통해 김왕식은 언어를 초월한 시각적 정서를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여인의 특이한 신체 반응―목욕 중에 몸에서 꽃이 피는 장면―은 그녀가 삶의 생명력조차 고통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복숭아꽃과 백일홍은 일시적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곧 시듦으로 귀결되는 운명의 은유다. 피어난다는 것은 시든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는 명제는, 작가의 존재론적 직관이 가장 압축된 문장이다.
작품 중반 이후, 이야기는 더욱 철학적인 차원으로 나아간다. ‘감정의 임대자’라는 자각은 존재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인간을 암시한다. 감정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그녀라는 공간을 빌려 잠시 거처할 뿐이다. 분노, 질투, 절망, 사랑은 각각 신체의 특정 부위에 둥지를 튼 감정의 세입자들이다. 이 설정은 인간이 감정을 지배한다고 믿는 통념을 뒤집는다. 여인은 점차 자신을 존재가 아닌 공간으로 인식한다. 이는 곧 탈주체화, 혹은 탈존재화의 선언이며, 인간이란 감정과 기억이 머무는 임시 거처에 불과하다는 사유의 발화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유리 심장의 파괴로 열린다. 그러나 심장이 아니라, 그 방 전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반전은 전율을 자아낸다. 심장은 여인의 상징이 아니라, 그녀를 가둔 감정의 감옥이었던 것이다. 그 심장이 깨질 때, 여인은 비로소 공간의 구속에서 풀려난다. 마지막 문장 ―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존재하는 것처럼” ― 은 모든 물질성과 감각을 벗어난 순수한 존재의 상태, 혹은 ‘무’의 미학을 암시한다.
김왕식의 문체는 단정하면서도 시적으로 날카롭고, 이미지와 개념 사이를 유영한다. 이 글은 철학적이되 과장되지 않고, 문학적이되 난해하지 않다. 감정을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 다룬 이 작품은, 고통의 형상화와 치유의 메타포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든다.
요컨대, 「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은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불가시의 실체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토록 명징하게 보여준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것은 말보다 투명한 침묵이며, 상처보다 고요한 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