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장미의 눈물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한 송이 장미의 눈물

― 아침을 흔드는 향기의 고백





청람 김왕식





아침햇살이 지붕 위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릴 때, 세상은 어김없이 새로워진다. 그 찰나의 순간, 햇빛은 대지의 기억을 더듬듯 나뭇잎을 쓰다듬고, 굴뚝의 연기를 감싸며, 이윽고 한 송이 꽃 앞에 멈춘다.

그 꽃, 진홍색 장미.

태양보다 붉고 피보다 짙은 색을 머금은 장미 한 송이가 마치 밤새 이슬을 먹고 서서히 붉어진 마음처럼, 고개를 천천히 든다.

그 고개는 곧 수줍은 듯 숙여지고 만다. 그 부끄러움은 어쩌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내면의 겸허일지도 모른다.


장미는 스스로를 뽐내지 않는다. 뽐낼 필요도 없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봄의 변주곡을 이끈다. 이 진홍핵의 장미는 단지 시각을 사로잡는 외형이 아니라, 생의 가장 깊은 정서가 응축된 결정체이다. 마치 심장을 꺼내어 꽃잎에 빚은 듯한 그 붉음은,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들이 한 방울씩 모여 이룬 빛의 농도이다.


진정 이 장미를 장미 되게 하는 것은 색도, 모양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향기다.

시인이 말한다. "은은하게 풍기는 장미향"이라고,

그 은은함은 외침이 아니라 속삭임이다. 고요한 그 속삭임은 언어를 갖지 않은 감정의 언어다. 눈을 감은 채, 누군가의 품을 떠올릴 때처럼 아련하고 따뜻하다. 향기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 감정의 잔상이다.

그 잔상이야말로,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이윽고 길을 걷던 누군가가 멈춰 선다. 그는 이름 없는 길손이다. 삶의 수레바퀴에 지치고,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하루를 걷는 이. 그에게 진홍의 장미는 한 편의 시이며, 향기는 그 시의 목소리이다. 눈은 꽃을 보고, 코는 향을 맡으며, 마음은 흔들린다. 흔들린다는 것은 약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되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굳어 있던 감정의 표면이, 장미의 향기 앞에서 금이 가는 순간, 인간은 다시금 인간으로 되돌아온다.


이 짧은 시편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을 건드린다. 꽃은 자연의 언어이고, 향기는 그 언어의 여운이다. 장미가 햇살 속에서 고개를 드는 것은, 마치 고백처럼 시작되고, 이내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사랑처럼 끝맺는다.

이 모든 과정이 묵묵히 이어지는 동안, 시인은 아무 말 없이 독자의 마음에 작은 떨림 하나를 남긴다.


어쩌면 이 장미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피어난 사랑일지 모른다. 겉으로는 피었지만, 안으로는 떨리고 있는.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숨기고 싶은.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피어난 형태가 바로 이 진홍의 장미다. 우리는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꽃보다 먼저 향기에 무너지고 만다.


삶은 때로 너무 시끄럽다. 광고의 소리, 자동차의 경적,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요함의 부재. 그런 세상 속에서 이토록 조용한 장미 한 송이, 그것도 아침 햇살에 고개를 드는 장미는 하나의 기적이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늘 곁에서 피어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눈앞의 장미를 보지 못한 채, 우리는 매일의 속도로만 달리고 있다.


오늘 아침, 문득 장미 한 송이 앞에 멈춰 섰다. 그 고요한 붉음이 가슴속에 작은 불씨처럼 번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간의 삶은 결국, 한 송이 장미를 보기 위해 걸어가는 노정이라는 것을. 그 여정의 끝에서, 언젠가 나도 고개를 들고 한 번 피어난 후, 다시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장미가 되고 싶다는 소망 하나가, 가만히 내 안에서 향기로 피어오른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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