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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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내리는 하모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맛비 빗방울이 고즈넉한 카페 창을 두드리는 오후, 시간은 마치 물속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는 듯하다. 창문 너머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하나의 음표가 되어 유리 위를 유영하고, 그 음표들은 잔잔한 선율을 이룬다. 무심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을 건드리는 듯 조심스럽다.
커피 한 잔.
그윽한 향은 무거운 공기 속을 뚫고 퍼져 나가, 사람들 사이 침묵의 틈을 부드럽게 메운다. 이 순간,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 감정을 녹이는 매개다. 깊은 산중에서 피어난 야생화처럼 그윽하고,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 누군가는 그 향에 어린 날의 골목길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잊힌 편지를 가슴속에 다시 펼쳐든다.
담소는 빗소리 사이를 비집고 흐른다. 거창하지 않은 이야기들—요즘 날씨, 아이 이야기, 오래된 친구의 근황—그러나 그 무엇보다 귀한 음악처럼 카페 안을 채운다. 말은 짧고 웃음은 길다. 가볍지만 공허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깊다. 바로 그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작은 무지개가 뜬다.
비, 커피, 대화—이 셋은 오늘의 하모니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이 음표라면, 커피 향은 선율의 흐름이고, 담소는 그 위에 얹힌 가벼운 화음이다. 이 모든 것이 겹겹이 겹쳐져, 하나의 수채화처럼 완성된다. 경계 없이 번지고, 색이 섞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조화.
오늘 이 카페는 작은 우주다.
바깥세상의 소란은 물막이벽 너머의 파도처럼 멀고, 이 안의 고요는 마음을 씻어주는 청명한 비누거품 같다.
비는 아직도 쉼 없이 내리고, 커피는 식지 않고, 말은 이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오후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마음의 창에 조용히 내리는, 삶의 한 장면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