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비, 그리고
상추 쑥갓 오이
늘샘 안혜초
아침나절 안개가 자욱하더니 오후 되며
부슬부슬 비가 되어 내린다 엊그제
재래시장 길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상추며 쑥갓 오이 가지를
파시던 그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울상으로 떠오른다
그랬을 걸
얼마 되지도 않는
야채 한소쿠리를 그냥
몽땅 사가지고 올걸
비가 더 많이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
나가봐야겠다
오늘도 나와앉아 계실까
■
소박한 삶의 서정, 마음을 적시는 연민의 시학
― 늘샘 안혜초의 「비, 그리고 상추 쑥갓 오이」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늘샘 안혜초 작가는 일상을 마치 마른 잎에 맺힌 이슬처럼 맑고 절제된 시어로 포착해 낸다. 그의 시는 억지로 의미를 만들지 않고, 삶이 흐르는 그대로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조용히 되살린다.
「비, 그리고 상추 쑥갓 오이」는 바로 그런 삶의 진실한 단면을 담은 시편이다.
시의 시작은 “아침나절 안개가 자욱하더니 / 오후 되며 부슬부슬 비가 되어 내린다”는 시간의 변화로 열리는데, 이는 곧 시적 감정의 흐름이자 기억의 이음매가 된다. 날씨의 변화는 화자의 내면 풍경과 묘하게 겹쳐진다.
안개는 미처 짚지 못한 마음이고, 부슬비는 그리움의 물기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재래시장 길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 상추며 쑥갓 오이 가지를 / 파시던 그 할머니”는 단순한 풍경 속 인물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민낯의 인생을 대표한다.
“주름진 미소가 울상으로 떠오른다”는 표현은 단숨에 시의 감정을 반전시킨다. 이는 물리적 관찰이 아니라, 화자의 양심에 맺힌 잔상이다. 그때 왜 다 사 오지 못했을까 하는 뉘우침은 단지 소비자의 후회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따뜻한 심성의 발현이다.
“그랬을 걸 / 얼마 되지도 않는 / 야채 한 소쿠리를 그냥 / 몽땅 사가지고 올 걸”이라는 구절은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다음엔 다르게 살겠다는 조용한 다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삶의 윤리는 규범이 아닌 ‘마음의 잔물결’에서 생긴다는 미학이 드러난다.
아쉬운 부분이 한두 곳 있다.
행 바꿈에 유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로, 엊그제,
→ 이 단어가 문장 중간에 끼어 있어 독해 흐름이 다소 갑작스럽습니다. 시적 여백과 감정의 물결을 살리기 위해 행을 바꿔 독립시키는 것이 좋겠다.
"얼마 되지도 않는 / 야채 한 소쿠리를 그냥 / 몽땅 사가지고 올 걸"
→ 감정이 중요한 부분인데 약간 어법상 부자연스러운 어구입니다. “그냥 몽땅 사올 걸” 정도로 간결하게 정리하면 리듬과 감정이 더 잘 살아난다.
"나가봐야 겠다"
→ “나가봐야겠다”가 맞춤법상 자연스럽고 정제된 표현이다.
□
비, 그리고
상추 쑥갓 오이
시인 늘샘 안혜초
아침나절 안개가 자욱하더니
오후 되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엊그제,
재래시장 길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상추며 쑥갓, 오이와 가지를
파시던 그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울상처럼 떠오른다
그랬을 걸
얼마 되지도 않는
야채 한 소쿠리를
그냥 몽땅 사올 걸
비가 더 많이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 나가봐야겠다
오늘도
나와 앉아 계실까
ㅡ
늘샘 안혜초 작가는 이 짧은 시를 통해 삶의 참된 미덕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그것은 ‘거창한 도움’이 아니라, ‘제때 베푸는 따뜻함’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눈은 낮고 작지만, 그 시선이 머문 곳은 고요한 울림을 낳는다.
이 시는 결국 한 줄의 비, 한 소쿠리의 채소, 한 사람의 노구에서 출발해, 한 사회가 얼마나 따뜻해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정결하고 정직한 이 시 한 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나서야 할 마음” 하나쯤은 꺼내 보이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좋은 시가 주는 묵직한 선물이다.
––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