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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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강할 때, 나는 부드럽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의 세상은 힘의 균형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그 균형을 진정 지탱하는 것은 어쩌면 부드러움일지 모른다. 강한 사람 앞에서 더 강하게 맞설 수도 있지만, 그 순간 세상은 대립과 충돌의 마찰음으로 가득 찬다.
반면, 상대가 강할 때 내가 부드러워진다면, 그 공간에는 긴장의 이음새가 풀리고, 고요한 울림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치 거센 파도 앞에서 바위는 부서질지언정, 모래는 품고 머금고 흘려보냄으로써 그 자체로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처럼.
한자리에 오래 머문 나무는 안다. 바람이 거셀수록 가지는 흔들리되, 뿌리는 더욱 유연하게 흔들림을 수용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부드러움’이란 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꿰뚫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유연성이고,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이들이 선택하는 태도다. 땅은 칼보다 부드럽지만, 칼을 삼켜 그 흔적조차 지운다. 물은 손으로 움켜쥐면 흘러내리지만, 바위를 깎고 길을 내며 스스로의 길을 만든다. 이렇듯 부드러움은 가장 강한 것을 누그러뜨리는 힘이다.
역사와 자연은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군자의 도다.” 누군가가 거칠고 단단하게 밀고 나올 때, 나는 한 발 물러서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라, 상대의 칼끝을 무디게 만드는 가장 온화한 전략이다. 감정을 감정으로 되받아치는 순간, 관계는 균열의 문턱에 선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라도 차분히 앉아 찻잔을 들어 올리면, 기류는 달라진다. 정적은 흡수되고, 언어는 무뎌지고, 때로는 침묵이 모든 감정을 녹여낸다.
인생에서 가장 부드러운 존재는 어머니의 손길이다. 분노한 아이조차 그 손 안에서 잠이 들고, 고통스러운 이도 그 손끝에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부드러움은 치유의 첫 언어이며, 강함의 모서리를 깎아주는 섬세한 조율이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나까지 강해질 이유는 없다.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의 강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강할 때, 내가 부드러워지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강한 자와 겨루어 나를 깎아내기보다, 한걸음 뒤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부드러움은 타인을 품는 용기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지혜이다. 그러니 오늘도 세상이 거세게 다가오거든, 차 한 잔을 따르며 묵묵히 웃자.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처럼,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