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봉도 시인의 시 「뿌리 깊은 나무들」을 읽고

김왕식









뿌리 깊은 나무들



시인 하봉도





숲 속
뿌리 깊은 나무들은
외롬과 슬픔도 없으리라

오래전 어느 날
바람이 잡아준 자리에
뿌리내려 싹을 트고
자수성가 이룬
무성한 나뭇가지 잎새들

오직
신선한 공기와 비바람
따스한 햇살만이
엄마같이 친구처럼
너희들 자라게 했지

때로는 강풍과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도
듬직한 닻처럼
땅속 깊은 뿌리로 견딘
시련은

이제 철마다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우람한 나무가 되었지

알록달록 겨울 앞둔
늙은 잎새들
낙엽 되어 떠나가도
봄날에
돋아날 새순 기다리며
슬픔을 잊고

또다시
번성할 울창한 숲 속에
생명 찬 푸름으로 빛나는
뿌리 깊은 나무들은
언제나 다툼 없이
자기 영역에 우뚝 서있지







하봉도 시인의 시 「뿌리 깊은 나무들」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하봉도 시인의 「뿌리 깊은 나무들」은 인생의 고요한 품격을 자연의 은유를 통해 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숲 속 깊은 나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정신의 근간을 말없이 보여준다. 외로움도, 슬픔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만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존재들—그 나무들은 마치 시인의 분신처럼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바람이 잡아준 자리”는 운명과 같은 삶의 출발점이다. 누군가는 험한 바람 끝에, 누군가는 햇살 드리우는 자리에 뿌리를 내렸겠지만,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가지를 뻗고 푸름을 이뤄낸다. 시인은 이를 “자수성가 이룬 무성한 나뭇가지 잎새들”이라 표현했는데, 여기서 ‘자수성가’란 다소 직설적이지만, 고난을 이겨낸 생명의 존엄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다만 자연의 유려한 흐름 속에 다소 인위적인 단어로 들릴 수 있으므로, ‘스스로 키운 가지들’로 표현을 다듬었다면 시의 조화가 더 깊어졌을 것이다.

또한 “너희들 자라게 했지”라는 구절은 친근하고 따뜻한 어조를 띠고 있지만, 시 전반의 정제된 분위기와 비교했을 때 조금 가볍게 들릴 여지가 있다. 이를 “그 자람을 품어냈지”처럼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부드럽게 정돈했다면, 전체 톤과 더욱 잘 어울렸을 것이다.

시인의 세계관은 ‘강풍과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 ‘듬직한 닻처럼’ 깊이 내린 뿌리로 살아내는 생명력에 있다. 고통은 고요하게 견디는 법이며, 기다림은 그 자체로 희망이라는 태도가 시 속에 흐른다.
“알록달록 겨울 앞둔 늙은 잎새들”이 떠나는 순간에도 시인은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봄날에 돋아날 새순”을 기다리며 “이별을 노래하듯 조용히 잠든다”는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다. 이렇듯 생의 끝마저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내면의 평화는 시인의 가치 철학을 고스란히 비춘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정수다. 다툼 없는 공존, 각자의 자리에서 우뚝 선 자존의 미덕이 숲 속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곧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자세이며, 시인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화해의 메시지다.

하봉도 시인의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시련과 계절의 흐름, 존재의 침묵 속에서도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해 내는 시인의 섬세한 영혼이 뿌리처럼 단단하게 박혀 있다.
몇몇 표현이 조금만 더 정제되었다면 시의 품격은 더욱 빛났을 것이나, 전체적으로 이 시는 독자에게 삶의 깊이를 곱씹게 하는 울창한 숲 하나를 선물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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