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처럼 곁에 서는 사람ㅡ수필

김왕식






등불처럼 곁에 서는 사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좋은 친구는 햇살이 아니다. 늘 밝고 따뜻한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려 흐린 날의 그늘처럼, 비 오는 날의 처마처럼, 슬픔이 고일 때 조용히 곁을 내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꽃피우는 순간이 있고, 그늘에 스러지는 계절도 있다. 좋은 친구란 그 양면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다. 찬란한 날에도, 초라한 날에도 눈빛을 바꾸지 않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벗이다.

좋은 친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짧은 한마디로 마음을 움직인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요 속에 안부를 묻는 이다. 세상이 등을 돌릴 때, 내게 등을 내어주는 사람. 내가 실패했을 때, 나의 이유를 묻기보다 내 옆자리를 비워주는 사람. 그 자리에 아무 말 없이 있어주는 일이야말로 인간관계의 가장 깊은 진심이다.

좋은 친구는 판단하지 않는다. 삶에는 누구나 사연이 있고,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하려는 자세를 지닌 이가 진정한 친구다. 무릇 인간은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비교하려는 성향이 있지만, 좋은 친구는 거기에서 한 발 물러선다. 대신 그는 말 없는 격려와 묵묵한 신뢰로 상대를 지지한다. 그 신뢰의 힘은 때때로 어떤 위로보다도 더 깊고 강하다.

좋은 친구는 오래된 책과 같다.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고, 언제든 펼치면 익숙한 문장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은 오랜 세월과 상처, 그리고 신뢰가 쌓여야 비로소 얻어지는 감정이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아도, 무거운 하루 끝에 “오늘, 괜찮았어?”라는 물음만으로도 마음이 풀린다. 그런 친구 하나 있다면, 인생은 그 자체로 위로다.

좋은 친구는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때 등 뒤에서 밀어줄 뿐이다. 어쩌면 좋은 친구는 내 삶의 거울이면서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을 비추어주는 창이기도 하다. 부러움 없이 축하해 주고, 시기 없이 함께 웃을 줄 아는 마음, 그것은 어떤 재능보다 값진 인간성의 표현이다.

좋은 친구는 함께 나이 들 줄 아는 사람이다. 젊을 때의 열정만 함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까지 나누며 사라지는 것들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익숙한 상처를 이해하고, 노년의 고요 속에서도 손을 맞잡을 줄 아는 사람.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빛나는 인연이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란, 내 삶이 기쁠 때 함께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삶이 가장 흐릴 때도 조용히 빛을 잃지 않고 서 있는 사람이다. 함께 떠들고 즐거운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많지만, 내가 주저앉을 때 함께 앉아줄 사람은 많지 않다. 좋은 친구는 등불 같은 사람이다. 길을 잃었을 때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한 점의 불빛. 그 불빛 하나가 있는 인생은 결코 어둡지 않다.

그런 사람을 얻었다면, 그 또한 내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란 결국 나를 비추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기에,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을 때, 세상은 덜 외롭고, 삶은 더 깊어진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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