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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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속에 핀 어머니의 삶
청람 김왕식
엄마는 꽃필 시절도 없이 삶에 떠밀려
열네 살, 아직도 댕기 머리 여민 어린 소녀였을 때
세상이 갑자기 성급해졌다.
나라를 잃은 땅,
일본 순사들이 골목마다 어른거리고
정신대로 끌려간 또래 언니들의 소문이 바람결처럼 흘러들던 그 무렵,
외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딸의 머리채를 풀어
아무 예복도 없는 시집에 들였다.
전쟁을 피한 대가로
엄마는 자유도, 배움도, 꿈도 내려놓아야 했다.
학교는 가보지도 못했다.
칠판 대신 부뚜막이 삶의 교과서였고,
연필 대신 멍든 손으로 쌀을 고르고 땔감을 엮었다.
세월이 흘러도 엄마는
자신의 이름 석 자조차 또렷이 읽지 못했다.
‘황순이’라는 그 소박한 이름조차
받침이 헷갈려, 누군가가 써주면
부끄러움에 웃으며 고개를 숙이셨다.
“글은 몰라도, 마음은 안다.”
그 말이 엄마의 평생 철학이었다.
열아홉,
아직 소녀의 살갗에 물 내음이 가시지 않았을 때
첫딸을 안았고,
서른셋,
지아비를 잃었다.
그날부터는 더 이상
슬픔조차 사치였다.
일곱 아이를 품에 안고
울음보다 밥을 먼저 지어야 했고,
사랑보다 생존이 먼저였다.
낮에는 논밭에서 해를 먹고
밤이면 초가지붕 밑에서
허공을 향해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 없이 목 놓아 울었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글자 한 줄 똑바로 읽지 못해도
엄마는 한 나라였고,
한 세대의 등불이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도
결국 그 흔한 환갑잔치 한번 받지 못한 채
쉰아홉에 지아비 따라
하늘로 떠나셨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편의 이름을
이제는 먼 하늘 끝에서
부르지 않아도 되게 되었을까.
그토록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운 글자들은
이제 저 하늘 별빛이 되어
당신 이름 ‘황순이’를
밤마다 반짝이며 불러주고 있을까.
우리는 이제야 안다.
글은 몰라도,
사랑 하나로 자식들을 키우고
세상을 견디고
생을 피워낸 이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어머니여,
그리운 나의 어머니여.
이제 당신 이름 석 자는
우리 가슴에
가장 눈부신 글씨로 새겨져 있습니다.
황순이.
그 이름은 책보다 깊고,
언어보다 따뜻한
삶의 언문이었습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