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한국문학 80년 사 ㅡ 상고대부터 2025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언어의 별을 따라


광복 이후 한국문학 80년 사
ㅡ 상고대부터 2025년까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강의를 시작하며


문학은 시대를 건너는 언어이며,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오늘 이 강의는 ‘광복 이후 80년 한국문학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정이지만, 그 흐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이전의 시간을 함께 되짚어야 합니다.

한국문학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고조선의 주술적 가요에서 삼국시대의 향가로, 고려의 한문문학과 속요, 조선의 시조와 가사, 고전소설로 이어지는 맥은 오랜 시간 우리 민족의 감정과 정신을 품어 왔습니다.
제의에서 서정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구비에서 문자로 이어지는 이 통시적 발전은, 광복 이후 문학의 양식과 주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배경이 됩니다.

이에 오늘 강의는 비록 광복 이후 현대문학 80년 사를 중심에 두되,
그 첫걸음으로 상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흐름을 간략히 짚고자 합니다.
이는 문학사 전체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구성으로, 단절이 아닌 연속성의 시각에서 문학을 조망하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민족의 고통과 기쁨, 침묵과 외침,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의 역사 사이를 왕래하는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됩니다.
시와 소설, 산문과 비평, 종이에 적힌 문장들 너머에서 들려오는 시대의 숨결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강의가 여러분의 삶과 사유에 조용한 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1.

■ 상고시대부터 갑오개혁 이전까지 한국문학의 특징
ㅡ원형에서 체계로, 신화에서 자아로


한국문학의 기원은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구비문학에 있으며, 이는 인간의 언어가 신성, 자연, 공동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던 상고시대의 의례적 삶 속에서 출발하였다. 한국문학의 뿌리는 단순한 이야기나 오락적 표현이 아닌, 생명과 죽음, 신성과 인간을 잇는 주술적 의식의 언어였다. 『공무도하가』, 『구지가』, 『황조가』와 같은 노래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왕을 소환하며, 고독한 인간의 정서를 드러낸다. 특히 『구지가』는 집단이 수로왕을 맞이하며 부른 집단주술의 노래로, 문학이 곧 정치적 상징이자 제의 행위였음을 말해준다. 이 시기의 문학은 대체로 집단적·의례적 성격을 가지며, 구술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가운데 자연물과 초월적 존재, 공동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며 문학은 점차 구비에서 기록으로 이행한다. 고구려에서는 『동명왕 신화』, 백제에서는 불경 번역과 한문학의 유입, 신라에서는 향가라는 독특한 시가 형태가 나타났다. 특히 향가는 향찰이라는 표기법을 통해 한자에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어내는 시도로, 문자 표현의 창조적 실험이기도 했다. 향가의 주제는 불교적 세계관과 개인적 정서, 충절과 죽음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헌화가』(자연의 찬미와 사랑), 『찬기파랑가』(스승에 대한 추모), 『도천수대비가』(생사의 이별에 대한 불교적 초월 사유) 등은 이 시대 문학이 신성과 인간 내면을 함께 품었음을 보여준다.

통일신라기에 이르러 향가는 문학적 형식과 철학적 깊이 모두에서 성숙기에 들어선다. 4구체 → 8구체 → 10구체로 이어지는 형식의 발전은 문학이 단지 말의 나열이 아닌, 예술로서의 구조미를 갖추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월명사의 『제망매가』는 죽은 누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노래로, 개인적 비애를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 성찰하며, 인간이 슬픔을 어떻게 언어화하고 승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균여의 『보현십원가』는 향가의 마지막 정점으로, 개인의 수행과 보살행을 열 가지 서원으로 읊으며 불교적 자비와 구원의 정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향가는 이후 시조로 이어지는 한국 정형시 문학의 원형이 되었고, 또한 불교, 자연, 인간, 초월을 통합한 고유한 정신 구조를 이룬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문학은 한문 중심의 기록문학으로 발전한다. 과거제도의 정착과 유교 이념의 확대는 관인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문 산문과 시문을 발전시켰다.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과 『국선생전』 등을 통해 자아의식과 조선 지식인의 풍자정신을 보여주었으며, 일연의 『삼국유사』는 불교적 사유와 민간설화를 통해 민족사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 시기의 한문학은 단순한 중국 모방이 아니라, 한국적 현실과 정서를 투영한 창작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유교적 교훈, 불교적 세계관, 자아의 문학적 인식이 삼중적으로 결합되며, 고전문학의 정신적 기둥을 세운 시기라 할 수 있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속요(고려가요)라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다. 『청산별곡』, 『가시리』, 『정과정곡』 등은 궁중과 민간을 넘나들며 전승되며, 여성화자의 목소리, 이별과 그리움, 인생의 덧없음을 감성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들은 주로 3 음보의 율격을 갖고 있으며, 집단노래에서 개인의 서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특히 『정과정곡』은 고려 예종 때의 충신 정서가 유배지에서 지은 작품으로 전해지며, 작자의 현실 체험과 심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개인 서정시의 효시로 볼 수 있다. 경기체가와 같은 궁중 중심의 시가도 출현하여 문학의 형식미와 예능적 요소가 강조되었고, 이는 문학이 권력과 결합하며 고도의 장식성과 유희성을 추구하던 흐름으로도 해석된다.

조선 전기에 이르면 문학은 명확히 유교적 질서와 성리학 이념 아래 체계화된다. 국왕 중심의 통치 이념과 문치주의는 문학을 교화의 수단으로 활용하였고, 문학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이상적 인간상(군자) 구현이 강조되었다. 특히 1443년 훈민정음의 창제와 1446년 반포는 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는 한글 창제를 통한 문자의 민주화이자, 국문 문학의 본격적인 출발선이었다. 『용비어천가』는 왕실의 정통성과 건국 정당성을 찬양한 정치적 서사시이며, 『월인천강지곡』은 석가모니의 덕을 기리는 불교 찬가로서, 유교와 불교, 정치와 종교가 문학 안에서 융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 시조 문학은 한국 고유의 정형시로 자리 잡았다. 3장 6·4조의 형식은 운율의 긴장과 이완을 가능케 하며, 간결한 언어 속에 깊은 사유를 담아냈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절의의 시조이며, 황진이의 시조는 절제된 언어로 인간적 고뇌와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윤선도는 자연을 벗 삼아 은거하며 도학적 이상과 서정적 감흥을 조화롭게 노래하였다. 시조는 이 시기 문학의 중심 장르로서, 귀족 계층과 지식인의 교양과 정서를 집약한 예술적 성취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문학은 보다 현실지향적인 면모를 강화한다. 실학의 대두와 상공업의 성장, 서민 계층의 사회 진입은 문학의 주체와 수용층을 다변화시켰다.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등의 한문 산문은 유교 질서의 모순을 비판하며, 정치·경제·사회 제도의 개혁을 문학적 사유로 연결하였다. 이는 문학이 도덕적 교화와 미적 유희를 넘어서 사회비판과 사유의 장으로 확대되는 계기였다.

이와 함께, 고전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은 조선 후기 문학의 또 다른 정점이다.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흥부전』 등은 신분제에 대한 도전, 가족과 효, 사랑과 의리를 다양한 서사 구조 속에서 풀어내며, 민중의 욕망과 현실 인식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판소리는 이야기와 음악, 연기의 결합을 통해 오락성과 예술성,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하며 문학의 구술 전통을 재활성화하였다. 이는 활자 문학과 달리 감각적이고 공동체적인 공연 문학으로서 당시 사회의 감정을 집단적으로 공유하게 했다.

가사문학 또한 이 시기 장편화되며, 유교적 교훈과 여성적 감성, 자연 예찬, 여행의 서정 등을 담아냈다.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문학의 수사성과 상징성을 강화하며, 조선 양반 지식인의 미의식을 집약한 대표작들이다.


□ 결론

상고시대부터 갑오개혁 이전까지의 한국문학은 신화와 주술에서 시작하여 불교와 유교를 거쳐, 민중의 삶과 감정을 표현하는 다층적 구조로 확장되었다. 표현 주체는 제사장과 왕에서 승려와 유학자, 나아가 평민과 여인, 광대와 서민까지 확대되었고, 구비에서 문자, 의례에서 예술, 집단에서 개인으로 문학의 본질과 형식은 지속적으로 변화하였다. 이 시기의 문학은 이후 근대문학으로 이행하는 데 있어 언어적, 사상적, 미학적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한국문학의 ‘정신적 원형’을 형성한 결정적인 시대였다. 문학은 단지 아름다운 문장의 수집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시대의 무게를 감당한 기록이었음을, 이 시대의 문학이 분명하게 증명해 준다.





2.

■ 갑오개혁부터 광복 이전까지 한국문학의 특징
― 전통의 해체와 근대의 모색, 식민의 억압을 넘은 언어의 투쟁



갑오개혁은 조선왕조의 해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동시에 한국문학이 전통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 이행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이 시기 문학은 구습과 계급적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려는 지식인의 사상과, 민족적 위기를 맞은 작가의 언어적 투쟁이 교차한 시기다. 갑오개혁부터 광복까지 약 50년의 문학사는 보통 개화기 문학(1894~1910), 일제강점기 전기 문학(1910~1930), **일제강점기 후기 문학(1930~1945)**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각 고유의 시대적 요구와 미학적 실험을 내포하고 있다.


1. 개화기 문학(1894~1910)
― 계몽의 언어로서의 문학


갑오개혁은 신분제 폐지, 근대적 교육제도 도입 등 조선 후기의 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사회적 대개혁이었다. 이에 따라 문학도 기존의 성리학적 윤리와 양반 중심의 정형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계몽의 도구로 변모한다. 이 시기의 문학은 주로 신소설과 신체시, 개화가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신소설은 전통 고전소설의 유희성과 윤리교훈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근대적 사상과 계몽정신을 적극적으로 담아냈다. 대표작으로는 이인직의 『혈의 누』(1906), 이해조의 『자유종』, 『빈상설』 등이 있으며, 그 속에는 ‘신교육의 필요성’, ‘우상의 타파’, ‘여성 해방’ 등 새로운 주제가 녹아 있다. 서사 구성은 단선적이지만, 주인공이 노력과 학문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루고 사회에 기여하는 식의 의지적 인간상이 중심이 되어, 근대적 인간형 창출의 실험장이 되었다.

또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체시(新體詩)의 출발로 평가된다. 이는 종래의 시조나 한시의 율격을 파괴하고, 새로운 운율과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하려는 시도로서, 서구 시가의 영향을 받은 한국 자유시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예술로서의 세련미보다는 실용성과 도덕적 목적에 방점이 찍혀 있었으며, 문학을 통해 국민을 계몽하고 나라를 지키려는 지식인의 의지가 강하게 투영되었다.



2. 일제강점기 전기 문학(1910~1930)
― 민족의 자각과 근대문학의 정착


1910년 한일병탄 이후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문학은 더욱 체계화되고 장르적으로 정립되며,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출발점을 맞이한다.

1919년 3·1 운동은 문학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민족의 자각이 고조되며, 문학도 단순한 계몽의 수단을 넘어 자아 탐색과 예술적 정련의 길로 나아갔다. 이 시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학의 장르 구분이 본격화되었다. 시는 전통적 형식을 벗어나 자유시로 정착되며, 김억의 번역 시집을 통해 서구 상징주의가 소개되었다. 이후 김소월은 『진달래꽃』(1925)을 통해 민요적 운율과 서정성을 융합한 민족서정시의 전범을 제시하였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정신을 상징적 언어로 형상화했다. 그의 ‘님’은 조국이자 자유, 혹은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가리킨다.

둘째, 소설에서는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등이 등장하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을 개척했다.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은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삼대』는 식민지 근대 도시 속의 계급갈등과 몰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셋째, 문학비평과 잡지 문화가 발달하면서, 작가 집단 중심의 문단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창조』(1919), 『폐허』, 『개벽』 등의 잡지는 문학 담론의 장이 되었고, 자의식 강한 신진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다.

이 시기는 근대문학의 체계가 정립된 시기로, 예술성과 민족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문학을 사회비판과 자아실현의 통로로 활용하였다.


3. 일제강점기 후기 문학(1930~1945)
― 억압 속 저항과 내면의 실험


1930년대는 일본의 전시체제 강화와 함께 조선 사회에도 한층 더 심화된 검열과 문화통제가 가해진 시기였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그리고 1941년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조선어 말살, 창씨개명, 잡지 폐간 등의 강압 속에서 언어의 정체성과 존재의식을 지키려는 투쟁을 이어갔다.

이 시기의 문학은 크게 세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저항문학과 민족문학의 계보가 이어졌다.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민족과 존재, 신과 양심 앞에 선 인간의 목소리를 고요하지만 단단한 시어로 그려냈다. 「서시」, 「별 헤는 밤」은 시대를 초월한 명시로 남았다. 이육사, 한흑구 등도 시대적 비판과 민족적 자각을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둘째, 모더니즘 문학의 실험이 두드러졌다. 이상은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을 통해 언어와 감각의 경계를 허물며 도시인의 분열된 자아와 불안을 파격적으로 드러냈다. 정지용은 『향수』, 『유리창』 등에서 이미지 중심의 감각적 언어로 시를 정제하였고, 이는 한국 모더니즘 시의 대표 사례로 남는다.

셋째, 리얼리즘 소설의 심화가 일어났다. 채만식의 『태평천하』는 친일 지식인의 위선과 탐욕을 통렬히 풍자했고, 김유정은 『동백꽃』, 『봄·봄』 등을 통해 농촌 민중의 삶과 심리를 해학적으로 묘사하였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도시의 풍경과 내면을 정밀하게 포착하며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접점을 실험하였다.

이 시기의 문학은 외압에 굴하지 않고 언어로 기억을 지키며, 문학으로 인간을 증명하려 한 시대의 증언이었다. 표현의 자유는 없었지만, 사유의 자유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남은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문학의 도덕성과 예술성을 함께 증명하는 유산이 되었다.


□ 결론

갑오개혁부터 광복 이전까지의 문학은 전통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근대를 모색하고, 민족의 언어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실험과 투쟁의 역사였다. 초기에는 계몽과 교육의 언어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아의 탐색과 민족의 정체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문학은 더 이상 유희도, 도식도 아닌 시대의 목소리, 언어의 방패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문학은 단지 문학사적 이행기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근대 한국인의 정신과 정체성을 형성한 문화적 기초이며, 광복 이후 문학이 자립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강력한 뿌리였다. 식민의 억압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았던 이 언어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한국문학이 세계 속에서 빛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3.

■ 광복 이후부터 2025년까지 한국문학의 특징
― 시대의 고통을 관통한 언어, 그리고 감각의 진화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한국문학사에서 단순한 정치적 독립을 넘어 언어의 자유를 되찾은 순간이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말조차 빼앗겼던 민족은 다시금 자신의 말로, 자신의 현실과 내면을 기록할 수 있는 자리를 회복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북 분단과 6·25 전쟁, 독재와 산업화, 민주화와 세계화, 그리고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시대까지, 한국문학은 쉼 없이 변하는 시대의 물결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을 갱신해 왔다. 이 시기의 문학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7기로 나눌 수 있다.


1. 해방기와 전쟁기 문학(1945~1959)
― 분단과 존재, 인간 본질의 탐색

광복 직후, 문학은 식민 잔재의 청산과 민족문학의 재건을 고민하며, 이데올로기 논쟁과 민족 정체성 회복에 주력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6·25 전쟁은 문학의 무게중심을 공동체보다 개인의 실존과 윤리 문제로 이동시켰다.

시문학에서는 서정주, 박목월, 조지훈 등이 민족 전통과 자연 서정을 복원하려 했으며, 김수영은 이후를 준비하는 전위적 감각으로 자유와 저항을 시의 화두로 끌어올렸다. 소설은 황순원의 『별』, 『학』, 손창섭의 『잉여인간』, 염상섭의 『몰락』 등을 통해 전쟁의 상처와 인간 내면의 황폐를 탐색하였다.

문학은 이 시기 국가와 민족, 전쟁과 평화, 인간과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근대적 자아의 언어를 형성해 나갔다.


2. 산업화와 저항의 문학(1960~1979)
― 현실 비판과 민중의 목소리

4·19 혁명과 5·16 쿠데타,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는 문학을 다시 현실의 언어로 불러냈다.

참여문학은 문학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김수영의 「풀」은 억압과 저항의 상징으로 널리 읽혔다. 신동엽의 「금강」은 역사적 상상력으로 민족 공동체의 이상을 그려냈다.

소설에서는 도시화·산업화에 따른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이 주제화되었다. 대표적으로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도시 빈민의 현실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려냈으며, 황석영의 『객지』,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최인훈의 『광장』은 체제와 개인, 이념과 양심의 충돌을 예리하게 묘사했다.

문학은 이 시기 민중의 입, 혹은 침묵한 다수의 증언자로서 기능하며, 언어를 통해 진실과 불의를 가르는 칼이 되고자 했다.


3. 민중문학과 저항의 정점(1980~1987)
― 억압의 시대, 문학은 무기가 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문학이 다시 한 번 존재의 이유를 환기시킨 계기였다.

김남주, 황지우, 안도현 등은 시를 통해 피로 씌워진 역사를 외면하지 않았고, 조정래는 『태백산맥』으로 민중의 눈으로 본 한국현대사를 장대한 서사로 완성했다. 이 시대의 문학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검열과 탄압을 뚫고 진실에 도달하려는 고투의 언어였다.

이 시기 문학은 역사와 민중의 편에 서는 문학, 혹은 윤리로서의 문학이라는 확고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작가를 시대의 증언자로 자리매김시켰다.


4. 민주화 이후의 다양화와 개인 서사(1988~1999)
― 탈이념, 감성, 여성의 목소리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 이후, 문학은 사회구조보다 개인 내면의 탐색에 집중하게 된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은 도시적 고독과 감각의 미세한 결을 정밀하게 포착하였고, 은희경과 신경숙은 『새의 선물』, 『외딴방』 등을 통해 여성의 성장과 기억, 침묵의 정서를 새로운 감성으로 형상화하였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역사적 인물(이순신)의 고독한 자의식을 통해, 진중하고 문학적인 질문을 다시금 묻는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이 시기의 문학은 ‘탈이념의 서정’, ‘자기 고백의 산문’, ‘개인의 서사화된 기억’을 통해 이전의 거대 서사와 거리 두며, 감성의 언어로 시대를 해석하려 했다.



5. 디지털 전환기 문학(2000~2010)
― 문학의 매체와 경계의 해체

IMF 이후, 세계화와 인터넷 보급은 문학 환경에도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문학은 종이책에서 포털, 블로그, 디지털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출판 중심 문단과 신생 작가 공동체가 병존하는 구조가 나타났다.

김영하는 『검은 꽃』을 통해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김애란의 『비행운』, 『두근두근 내 인생』은 젊은 세대의 언어와 감성을 반영한 세련된 문체로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시문학에서는 나희덕, 김행숙, 이장욱 등이 감성의 밀도와 서정의 구조를 혁신하며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이야기의 감각과 속도에 주목하며 문학의 외연을 확장해 나갔다.


6. 다원성과 플랫폼 문학의 시대(2011~2020)
― 웹소설, SF, 생태, 젠더,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2010년대는 그야말로 장르의 홍수, 감각의 다원화 시대였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육체, 폭력, 사회 억압을 서정적이고 심미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맨부커상을 수상하였고,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이정표를 세웠다.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은 SF적 상상력과 생태 감성을 접목해 새로운 서사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은 여성성과 시의 미학을 실험적으로 탐색한 시집으로, 한국 페미니즘 시학의 정점을 형성했다.

한편, 웹소설과 웹툰, 유튜브 기반의 스토리텔링은 문학의 소비 구조를 바꾸며, 『전지적 독자 시점』, 『나 혼자만 레벨업』 등 K-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 확산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문학은 이제 ‘텍스트’에서 ‘콘텐츠’로, ‘문단’에서 ‘플랫폼’으로 옮겨갔고, 그 안에서 젠더, 계층, 이주, 장애, 생태, 감정노동 등 다층적 삶의 갈래가 문학의 주제가 되었다.


7. 팬데믹과 AI 시대의 문학(2021~2025)
― 존재의 재발견, 작가성의 경계 실험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 전체의 고립과 상실, 불안을 전면화시켰다. 문학은 이를 치유의 서사, 돌봄의 언어, 회복의 윤리로 형상화하려 했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가족사와 여성 서사를 통해 기억과 연대의 문학적 가능성을 확장하였고, 장석남, 김현 등의 시인은 AI와 인간 사이, 기술과 감성 사이의 존재적 간극을 시적 언어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한편,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작가는 누구인가’, ‘문학은 인간의 전유물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문학 내부로 끌어들였다. 창작 주체의 모호성, 감성의 알고리즘화, 감정의 상품화가 논의되는 이 시기, 문학은 단지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됨의 본질을 사유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 결론

광복 이후 80년의 한국문학사는 단지 장르나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시대와 존재를 사유해 온 긴 여정이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간을 기록했고, 산업화의 소외 속에서 민중을 기억했으며, 민주화의 길목에서 진실을 외쳤다. 디지털 속도와 기술 문명의 파도 속에서도 문학은 여전히 가장 느리되 가장 깊은 사유의 도구로 남아 있다.

2025년의 한국문학은 문단을 넘어, 플랫폼과 사람, 기술과 감성, 실험과 증언의 경계에서 새로운 인간학적 언어를 빚어가는 중이다.
문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 강의를 마치며

긴 시간 동안 이 강의에 귀 기울여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상고시대의 제의적 노래에서 시작해, 근대의 민족 계몽, 분단과 산업화의 고통, 그리고 AI 시대의 존재적 질문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여정은 곧 우리의 삶의 궤적이자 시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문학은 단지 글을 읽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온 흔적을 읽는 것이며, 말해지지 못한 침묵을 듣는 일입니다. 그 안에는 조상들의 슬기, 시대의 울분, 이름 없는 자들의 숨결, 그리고 우리가 아직 마주하지 못한 내면의 진실이 켜켜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단순히 '문학의 흐름'을 배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와 '존재의 기억'을 다시 되새긴 것입니다.

특히 AI와 플랫폼이 문학의 무대를 바꾸고 있는 지금, 문학은 더 이상 종이에 고정된 예술이 아닙니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퍼 올린 감정, 클릭 위에 떠도는 단어들, 그리고 다시 인간의 손끝에서 길어 올린 사유들이 문학의 재료가 됩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문학은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 물음은, 책 한 권으로는 답할 수 없고, 강의 한 차시로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물음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친 유일한 윤리이며, 인간다운 길입니다.

이제 강의는 끝나지만, 여러분의 문학은 지금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 한 줄, 기억 속의 한 문장이 삶의 어느 순간 다시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 각자의 언어로, 이 시대를 증언하는 또 하나의 문학이 태어나길 소망합니다.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이 문학처럼 따뜻하고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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