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1.
틈 ― 존재의 숨결이 스며드는 자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삶은 틈에서 시작된다.
땅과 하늘, 나와 너, 어제와 오늘 사이,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이 있다. 그 틈은 허약해 보이나, 실은 모든 것이 태어나는 자궁과도 같다. 생명은 굳게 닫힌 흙을 비집고 틈을 뚫고 올라오고, 사랑은 완전한 침묵 속 빈틈에서 피어난다. 틈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의 빈틈을 메우며 살아간다.
문득, 그 빈틈을 애써 채우기보다는,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내 안의 틈, 타인의 틈을 부족이 아닌 여백으로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을 사람답게 사랑할 수 있다.
틈은 또한, 고요의 이름이다.
지나친 계획과 성취로 꽉 찬 삶은 결국 스스로를 짓누른다. 마음에도 숨구멍이 필요하다. 잠시 멈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침묵의 틈. 그 안에서 생각은 깊어지고, 감정은 정화된다. 우리는 그 틈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말한다.
"얼굴은 틈이다. 그 틈을 통해 타자의 고통이 스며든다." 우리가 누군가의 아픔을 마주하는 것도, 그 틈 덕분이다. 내 안의 틈은 상처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상처가 연민의 문을 열어준다. 상처 없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나는 틈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외려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사랑이 시작되며, 신의 숨결이 지나간다 믿는다.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는 살아 있고, 그 틈으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당신의 틈을 숨기지 말라.
그 틈은 당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증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