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3
고요 ― 말 없는 울림의 진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고요는 존재의 가장 낮은 숨결에서 피어난다. 말이 멈춘 자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소리를 듣지만, 정작 가장 필요한 소리는 늘 고요 속에서 울린다. 사랑도, 진심도, 회복도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는 조용히 스며드는 쪽을 택한다.
고요는 결코 공허가 아니다. 그것은 가득 찬 충만이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바다다. 모든 혼란과 번잡이 물러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그 잔잔함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문득 깨닫는다. “가장 조용한 순간에, 가장 큰 울림이 태어난다.” 고요는 단순한 침묵이 아닌, 마음과 마음이 말을 쉬고 서로를 감지하는 예술이다.
많은 이들이 말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말보다 깊은 눈빛이며, 말 없는 기다림이다. 어머니가 아이의 열을 밤새 닦아낼 때,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요는 세상 어떤 문장보다도 위로의 힘을 지닌다. “가장 위대한 언어는, 때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가만히 있음’을 무력함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는 것은,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존재의 본래 박동’에 귀 기울이는 행위다. 산은 고요해서 깊고, 바다는 고요해서 크다. “깊은 존재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만 존재 그 자체로 울릴 뿐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말없이 걷는다. 그러나 그 걸음은 타인의 인생을 바꾸고, 마음의 지층을 흔든다.
고요는 시간을 끌어당긴다. 흘러가던 것을 붙들어 앉히고, 흘려보낸 것과 화해하게 한다. 고요 앞에 서면 미움도, 조급함도, 그리움도 잠시 숨을 멈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말없이 서로를 껴안는다.
그래서 고요는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머무는 자리다. 피하지 말라. 고요는 언제나 먼저 도착해 있다.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다만 아무 말 없이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