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ㅡ흠뻑 젖어야 들리는 노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흠뻑 젖어야 들리는 노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비는 언제나 갑작스레 내리는 듯하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구름 속에서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말 못 할 울음을 참다가, 어느 순간 그저 흐르는 것. 빗방울은 하늘이 흘리는 눈물이며, 땅이 반가워하는 숨소리다. 우리는 자주 비를 피하지만, 때로는 흠뻑 젖어야 들리는 노래가 있다.

비 오는 날의 길거리는 고요하다. 사람들의 걸음은 빨라지고, 말수는 줄어든다. 도시의 소음조차 빗소리에 묻힌다. 이 고요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더 선명해진다. 감정은 젖을 때, 본래의 결을 드러낸다. 우리는 비를 싫어하면서도, 그 아래에서 혼자 걷는 일을 은근히 좋아한다. 세상과의 연결을 잠시 끊고, 내 안으로 귀 기울이게 되는 시간.

비는 씻어낸다. 먼지 쌓인 나뭇잎을 닦아주고, 굳은 마음에 물기를 불어넣는다. 눈물처럼 말없이 흐르면서도, 안팎을 정화한다. 울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듯, 비 맞은 뒤 풍경은 언제나 한층 맑아진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날,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은 날, 비는 가장 적절한 배경음이 된다.

우산이라는 작은 지붕 아래, 사람들은 모인다. 평소엔 서로 멀리 있던 이들도 비 때문에 가까워지고, 같은 리듬에 귀를 기울인다. 비는 혼자이면서도 함께인 감정을 낳는다. 함께 젖는다는 것은, 함께 삶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 그래서 연인들은 비를 핑계 삼아 거리를 걷고, 시인은 비를 이유 삼아 침묵을 깨운다.

비가 내리는 날, 창가에 앉아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바라보면 문득 마음도 흘러간다. 오래된 기억이 흐르고, 잊었다고 여긴 감정이 스며오기도 한다. 비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감정의 매개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녹아들며 자신과 화해한다.

비는 고요하지만 완고하다.

제 갈 길을 묻지 않고, 고요히 스며든다.

그 성실한 낙하가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우리 삶도 그러하다.

크고 거창한 말이 아니라, 조용히 떨어지는 하루하루가 결국은 흐름을 만든다.

비처럼 살아가라. 멈춤 없이, 소리 없이, 그러나 반드시 어디론가 향해 가는 삶. 그 안에 진짜 노래가 있다.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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