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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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 머물렀던 자리의 말없는 기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의자는 앉는 도구, 그 이상이다.
의자는 사람이 머물렀던 시간을 기억하고, 떠난 이후에도 그 자리를 지킨다.
의자는 말이 없다.
허나 많은 것을 말한다.
구겨진 쿠션, 살짝 기운 등받이, 손때 묻은 팔걸이. 모두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적인 증거다.
어린 시절 교실의 나무의자는 온몸으로 자랐다. 긴장과 기대, 졸음과 웃음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교실에 남겨진 의자들은 하나같이 조용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깊은 울림이었다. 그 의자들은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또 얼마나 뜨겁게 꿈꿨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의자는 비어 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누군가 앉아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자리를 비운 후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빈 의자 하나를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자리에 앉았던 이를 떠올린다. 그것은 사랑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혹은 사라진 시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의자는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형상이다.
카페 한켠의 의자, 병원 대기실의 의자, 지하철의 플라스틱 의자, 그리고 집의 식탁 의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의자에 앉고, 또 떠난다. 그 모든 의자들은 우리 인생의 정거장이다. 한때의 머묾이 있었고, 그 자리엔 감정이 있었다. 앉았다는 것은 멈추었다는 뜻이고, 멈추었다는 것은 생각했다는 증거다.
의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허나 아무 의자에나 앉을 순 없다. 어떤 의자는 권위를, 어떤 의자는 환대를 상징한다. 어떤 의자는 누군가의 상실 이후로 아무도 앉지 않는다. 우리는 의자를 통해 관계를 읽는다. 그와 함께한 의자, 나 혼자 앉은 의자, 떠나버린 이가 남긴 의자.
삶은 의자처럼 흔들리며 균형을 배운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우리는 다시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언젠가 떠날 자리를 준비한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앉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따뜻하게 머물렀는가이다.
의자는 말이 없다.
허나 그 자리에 머문 마음만은, 언제나 오래도록 기억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