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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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 가장 깊은 소리가 들리는 순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소리는 귀로 듣지만,
고요는 마음으로 듣는다.
고요는 무(無)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존재의 숨소리다. 우리가 외부의 소음을 걷어내는 순간,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요는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정제된 언어다.
현대인은 고요를 불편해한다. 틀어놓은 음악, 켜놓은 TV, 끝없는 알림 속에서 살며 고요를 회피한다. 고요는 낯설고, 때론 무섭기까지 하다.
가장 창조적인 순간은 언제나 고요 속에서 탄생했다. 시인은 침묵 속에서 시를 낳고, 철학자는 고요 속에서 사유를 펼친다. 고요는 가장 높은 밀도의 공간이다.
이른 아침, 누구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방 안을 감싸는 고요함. 그것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어둠이 물러가며 빛을 준비하는 예고편이고, 하루가 말을 시작하기 전의 깊은숨이다. 그 고요 속에서 마음은 정리되고, 어제의 파편들이 하나로 모인다. 고요는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그러나 그 질문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고요는 자연의 언어이기도 하다. 눈 내린 산길, 바람 한 점 없는 호숫가, 안개 낀 들판. 그 어떤 장엄한 음악보다 더 울림이 크다. 고요한 자연 앞에 설 때, 우리는 겸허해진다. 말이 필요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존재는 설명 없이도 충만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연은 늘 묵언의 교사다.
사람 사이에도 고요가 있다.
말없이 마주 앉은 시간, 긴 대화보다 깊은 신뢰를 느끼게 한다. 서로의 침묵을 존중할 줄 아는 관계야말로 성숙한 인연이다. 고요는 감정의 진폭이 다 가라앉은 뒤에 남는 여운이다. 그 여운이 오래 남는 관계는, 말보다 더 진실하다.
고요는 늘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우리가 듣지 않을 뿐이다. 지금도, 책상 위의 연필, 창밖의 하늘,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요는 말을 걸고 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단단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고요는 외면이 아니라 귀 기울임이다. 그것은, 내면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순간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