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자 시 「그 말 하나면」 을 읽고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그 말 하나면




시인 변희자





그냥……
이 시가, 지난밤 제 마음입니다

잘 자라는 그 한마디

잘 자라는
그 짧은 말 한마디를
기다리다
밤이 다 지나갔어요

창밖엔 벌써
새벽 냄새가 스치는데
내 마음은 아직
어젯밤에 머물러 있어요

그 말 하나면
괜찮았을 텐데
그 말 하나가
그리워서 아팠어요






그 말 하나가 지닌 생의 온기
― 변희자 시인의 시 「그 말 하나면」 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의 「그 말 하나면」은 한 편의 짧은 시지만, 그 안에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갈망—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절절히 녹아 있다. 시는 ‘잘 자라’는 평범한 한 마디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운 화자의 내면 풍경을 통해, 말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결핍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단순한 언어를 매개로 감정의 결을 가다듬는 능력은 시인의 삶과 미의식이 얼마나 일상적이고도 본질적인 인간다움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의 중심에는 '말'이 있다. 말은 단지 소리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고 마음을 건네는 살아 있는 매개다. “잘 자라는 그 짧은 말 한마디”는 곧 사랑의 증표요, 존재에 대한 응답이다. 이 말 한마디의 유무는 단지 하루의 기분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 안에서 얼마나 소중히 여겨지는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시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언어와 존재의 본질적 연결을 짚어낸다.

“밤이 다 지나갔어요”라는 문장은 단순한 시간이 아닌 ‘기다림의 고통’으로 변환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오히려 화자의 내면을 더 선명히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새벽이 밝아오고 세상은 다시 움직이지만, 화자의 마음은 “아직 어젯밤에 머물러” 있다. 이 정서적 정지 상태는 단순한 감정의 유예가 아니라, 아직 닿지 못한 한 마디가 주는 부재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로 작동한다.

이 시는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을 자연스럽게 연상케 한다. 임을 향한 그리움, 말 한마디에 의탁하는 기다림의 구조, 시간이 주는 고통의 농도는 시대를 넘어 여성적 감성과 존재의 고독을 공명시킨다. 다만 변희자의 시는 한층 더 현대적인 투명성을 지녔다. 수식어를 절제하고, 감정의 과장을 배제한 채, 담백하면서도 직선적으로 다가온다. 이 절제미가 오히려 감정의 진실함을 더욱 빛나게 한다.

변희자 시인의 미의식은 화려한 언어의 장식보다는 ‘마음의 실재’를 포착하는 투명한 언어에 있다. 그는 거대담론보다는 미세한 감정의 떨림에 귀 기울이며, 작지만 간절한 삶의 순간들을 기록해 낸다. 이 시 또한 그러하다. 누구나 겪었을, 그러나 누구도 말로 옮기기 쉽지 않았던 그 순간—한 마디가 너무나 간절했던 그 밤의 풍경을, 시인은 ‘그 말 하나’로 정제해 냈다.

말의 온도와 부재의 공허, 사랑의 실존성과 기다림의 시간성,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려는 인간의 절실한 몸짓. 그것이 이 시가 던지는 깊은 울림이며, 변희자 시인이 삶을 대하는 리얼하고도 섬세한 시적 철학이다. ‘그 말 하나면’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시 전체를 응축한 메타포가 되어, 독자의 심장을 조용히 건드린다. 결국 시인은 말한다. 사랑은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매일 밤 들려오는 작은 안부일지도 모른다고.




ㅡ 청람 김왕식



□ 변희자 시인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발상의 전환이 만든 기적의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