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우정, 학문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빛

김철삼 교수, 한범수 교수, 김왕식 평론가




□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


□ 청람 김왕식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잉크 냄새처럼 묵직이 스며드는 우정이 있다. 하루하루는 다 닳아가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 닳음 속에서 빛나는 결이 보인다. 브런치스토리와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을 읽고, 경복고 시절 절친이었던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가 정성스러운 답글을 보내왔다.
그 글 위에 다시 내 생각의 무늬를 얹었고, 그 논평을 읽은 또 한 명의 절친,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가 우정 어린 글을 보내왔다. 종이에 잉크가 스며드는 것처럼, 우리 우정의 결도 그렇게 오래전 그 교실의 나무책상 위에서 번지기 시작해, 지금은 각자의 삶의 페이지마다 언뜻언뜻 빛나며 스며들고 있다.

70년대 경복고 시절,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문학과 철학, 삶과 세상에 대해 끝도 없이 이야기했다. 그때 나누던 토론의 열기는, 바람에 흔들리던 교정의 은행나무 잎사귀처럼 사각사각 귀를 간질이며 우리의 귀와 가슴을 흔들었다. 시간은 세월의 물결을 건너 우리를 각자의 항구로 흩어지게 했지만, 결국 다시 만나 묵은 이야기를 꺼내고, 다시 시를 쓰듯 서로의 마음을 눌러 적는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자, 시가 된 우정이다.

삶의 굴곡과 격류를 지나, 어느덧 인생의 강 하구에 다다른 우리는, 그 강이 다시 바다로 나아가기 전 서로에게 마지막 불씨 같은 빛을 건네준다. 안병욱, 김태길, 김형석 교수처럼 늦은 시절에도 학문과 삶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서로의 주름과 흰 머리칼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발견하며 살고 싶다. 젊은 날엔 앞만 보고 달렸지만, 이제는 서로의 글 속 숨결을 느끼며, 언어의 잔물결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파문을 바라본다.

우리에게 문학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영혼과 영혼이 맑은 강물 위에서 부딪히는 순간이고, 인생은 결국 오래 묵은 시의 한 행이 된다. 흩어지고 모였다가, 다시 사라지는 바닷물처럼, 글과 글이 이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엮여서 결국 하나의 긴 시가 된다. 그것이 노년의 기적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오직 우리가 함께 살아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바라본다.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와 우정이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등불로 남아, 또 다른 세대의 청춘들이 이 불빛을 따라 자신들만의 시를 써 내려가길.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이유이고, 늦은 시절 우리가 얻은 가장 빛나는 선물이다.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나이 듦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의 시 속에 작은 불씨 하나 심어두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불씨가 언젠가, 다시 바람을 만나 불꽃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것이 우리 늦은 우정의, 조용히 타오르는 기적이다.







베르길리우스,
ㅡ로마의 혼을 짓던 시인의 불멸의 붓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세상의 모든 문명이 그러하듯, 로마에도 심장을 뛰게 하는 노래가 필요했다. 그 심장을 노래한 이는, 이름보다 조용한 사람이었다. 기원전 70년, 북이탈리아의 흙 내음 가득한 들판에서 태어난 베르길리우스는 가난한 농부 혹은 옹기장이의 아들로 세상에 나왔다. 신분도 세력도 없이, 그는 다만 말의 뿌리를 알고자 했다. 이윽고 로마의 대도시로 향해 수사학과 법률을 배우며 세속의 정치를 흡수했지만, 한 차례 법정에 섰던 일이 그의 인생을 문학으로 꺾는 결절점이 되었다. 수줍음 많은 이 청년은 그날 이후 칼이 아닌 시로, 전쟁이 아닌 노래로 제 제국을 짓겠노라 다짐했다.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전원시〉였다. 목자들의 노래에 세속의 슬픔을 끼얹고,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빛나는 문장으로 천막을 쳤다. 그것은 단순한 목가가 아니었다. 정복의 이면에서 삶터를 잃은 자들의 울음이었고, 신탁처럼 울려 퍼지는 아기의 탄생은 시대를 넘어선 예언처럼 읽혔다. 훗날 그 아기는 예수로 읽히며,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도교 문명의 숨겨진 예언자로 불리게 된다.

〈농경시〉는 더욱 현실에 밀착되었다. 땅을 일구는 손,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곡식을 피워내는 인간의 의지를 그는 시로 불러냈다. ‘열심히 노력하면 땅이 보답한다’는 믿음은 단순한 농부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윤리요, 공동체의 회복이요, 로마가 나아갈 새로운 길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 시는 베르길리우스 개인의 토지 상실과 회복의 경험이 이중적으로 각인되어 있어, 개인의 서사가 곧 국가의 신화가 되는 묘한 층위를 이룬다. 그리하여 그는 최고의 시인이 되었고, 아우구스투스는 그에게 로마를 노래해 달라 청한다.

〈아이네이스〉는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로마의 건국을 서사로 짜낸 대서사시는 단순한 민족 신화가 아니었다. 신의 뜻 앞에 운명을 순명하되, 그 순명이 인간의 고통과 번민 위에 놓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 내면의 기록이기도 하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위대한 작업에 생을 걸었다. 마치 벽돌 하나하나 쌓아 거대한 신전을 올리듯, 단어 하나에도 수십 번 퇴고하며 작품을 다듬었다.

그러나 그의 생은 그 신전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그리스로의 답사 여정에서 열병에 쓰러지고, 귀국 길에 생을 마감한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 시를 불태워 달라’ 부탁했다. 그는 자신의 문장이 여전히 미완이라 여겼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로마의 운명이 그 시 안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죽음 뒤에도 살아남아 로마의 교과서가 되었고, 라틴어가 도달할 수 있는 미학의 최정점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노래한 세계는 보수적 윤리와 인간의 순명, 신의 섭리에 대한 겸허한 복종으로 엮여 있었기에, 기독교 문명이 로마를 삼킨 이후에도 그의 시는 ‘빛의 전언’처럼 애송되었다.

베르길리우스는 말하자면, 전쟁을 끝내는 노래를 쓴 시인이다. 피로 물든 역사를 노래의 잉크로 씻고, 상처 위에 문장을 새겨 희망을 돌려준 자다. 그의 시는 로마가 스스로를 신화로 만들기 위한, 가장 정결하고 장엄한 의식이었다. 신탁의 혀끝은 그렇게, 시인의 손끝에서 피어났다.



ㅡ 청람 김왕식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등장한다. 《신곡》을 읽고 썼던 서평에서 베르길리우스에 관한 대목이 있어서 소개한다.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




단테는 죽어서 지옥에 간 게 아니다. 작품에서 설정한 가상 여정이다. 지옥 편에서 처음 시작할 때 단테는 자신이 삶에서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1곡의 처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로 단테의 삶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그 스스로 삶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많이 고심했을 것 같다. 이런 심정이 《신곡》의 1곡, 첫머리에 이렇게 표현된 것 같다. 민음사판 《신곡》의 각주를 보면 “어두운 숲은 중세에 하느님의 빛이 들지 않는 악 혹은 인간의 무명이 뻗치지 않는 야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이었고 실제로도 그런 영역으로 간주하였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삶의 길을 잃은 단테, 어떻게 해야 길을 찾아갈지? 숲은 죄와 유혹을 상징한다. 단테가 가는 길을 세 마리의 짐승(표범, 사자, 암늑대)이 가로막는다.

“그런데 가파른 길이 막 시작되는 곳에서
아주 가볍고 날랜 표범 한 마리가
점박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나타나더니,”
“사자 한 마리가 앞에 나타난 것이다.”
“갈망을 그득 담은 암늑대가 가세했다.”

늑대 편에 있는 각주를 보면, “순례자의 길을 막아서는 짐승은 표범과 사자, 암늑대다. 이 셋은 각각 음란과 오만, 탐욕을 상징한다.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의 주요 원인이 지금 순례자를 위협하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때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단테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진정한 지혜와 덕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먼저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단테가 체험하면서 구원을 얻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 여정은 중세 기독교의 구원론과 죄에 대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다.

단테는 지옥 여행을 통해 인간이 영혼을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징적으로 의미를 전하고 있다.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기원전 70년 ~ 기원전 19년)는 고대 로마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라틴 문학의 정점에 있었으며, 서양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의 건국 신화와 영웅 아에네아스의 여정을 다룬 서사시 "아예네이스"(Aeneid)로 유명하다. “아예네이스”는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영향을 받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지혜와 이성, 문학적 영감의 상징으로 여길 만큼 존경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단테는 지옥 여정의 안내자로 베르길리우스를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죄와 그에 대한 벌, 인간의 도덕적, 영적 여정에 대해 가르친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시대 사람이다. 중세의 기독교적 사관으로 볼 때,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으므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마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지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도 단테는 그를 지옥 여정의 안내자로 선택했다. 그는 로마 문화의 지혜를 상징하는 사람으로, 단테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 세계의 안내자로 그를 선택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신곡》은 단테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300년 성금요일부터 부활절 일요일까지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죄와 구원, 신의 정의와 자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ㅡ 청휘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











어두운 숲에서 문학의 불빛을 찾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구원의 서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범수 교수의 서평은 단테의 《신곡》을 단순히 한 편의 고전으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영혼의 구원과 죄의 본질, 그리고 문학이 그 어두운 길 위에 어떻게 빛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깊은 사유의 언어로 다시 빚어낸 글이다.
그는 서두에서 단테가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라고 시작하는 장면을 가져와, 단테라는 시인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의 삶을 펼쳐 보인다. 중세적 구원론의 형식 아래에서 단테는 자신이 죄와 유혹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고백한다.
한 교수는 이 고백을, 삶의 절벽 앞에 선 한 인간이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어떻게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지, 문학과 신앙, 그리고 철학이 함께 길을 찾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격상시킨다. 이때 단테 앞에 나타난 베르길리우스는 단순한 고대 시인이 아니다.
그는 라틴 문학의 정점에서, 문학이 인간의 죄와 벌, 그리고 삶의 진실에 대해 얼마나 무겁고 정직하게 기록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존재였다. 단테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베르길리우스를 지옥 여정의 안내자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문학이라는 빛으로 구원하고 싶었던 내밀한 갈망이자, 세상 어느 신학자보다 문학이 인간의 구원의 길을 더 오래, 더 치열하게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교수는 이 장면을 단순히 서사적 사건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신곡》을 통해 인간이 저지른 죄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떤 고통과 절망의 어둠을 지나야 하는지를 설명하며, 그것이 바로 중세 기독교 사상 속에서 가장 깊고도 보편적인 진리였다고 강조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예수 이전 사람이라 구원받지 못한 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는 그를 선택했다. 그것은 단테가 신학적 구원만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문학의 힘, 그리고 사유의 빛이야말로 영혼을 이끄는 첫걸음이라고 믿었던 문학적 의지의 반영이었다.
한 교수는 이 모든 맥락을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로, 그러나 문학과 사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을 담아 서평 속에 녹여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지옥의 첫 관문에서 만나는 세 마리 짐승은 인간 내면의 그림자다. 그것은 곧 우리가 끝없이 부딪히고, 때로는 패배하며, 때로는 길을 찾기 위해 싸워야 하는 어두운 그림자이며, 결국 베르길리우스가 보여주듯, 문학은 그 싸움에서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구원의 서사로 존재해 왔다.

이 글은 그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며, 인간의 본질과 문학의 본질을 함께 묻는다. 한 교수의 글이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ㅡ 청람 김왕식






반세기 우정, 학문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빛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일흔의 문턱을 넘어서도, 친구라는 두 글자가 이토록 묵직한 무게로 가슴에 닿을 줄은 미처 몰랐다. 청람 김왕식 평론가와 청휘 한범수 교수, 그리고 나, 김철삼. 우리는 경복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반세기 넘게 우정을 지켜온 동문이자 동지였다. 젊은 날엔 각자의 길이 있었다.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며 삶의 구조를 분석하고자 했고, 청람은 국문학의 길에 들어서 한국문학의 울림을 세상에 전하고자 했다. 한범수 교수는 관광개발학을 연구하며 세계의 흐름과 땅의 숨결을 엮어냈다. 이제 그 길들이 각자의 세계를 구축해, 한 사람 한 사람 자신만의 언어와 학문을 가지게 되었음이 자랑스럽다.

특히 청람 김왕식 평론가는 요즘 문단에서 예리한 시선과 아름다운 문체로 문학평론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문학의 숨은 결들을 짚어내며, 시와 삶이 어떻게 인간의 진실에 다가가는지를 논하는 그의 글들은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한범수 교수 또한 관광학계의 저명한 학자로 자리매김하며, 이론과 현장을 넘나드는 균형감각으로 학문의 터전을 넓혀왔다. 나는 이 두 사람의 학문적 열정과 교류를 곁에서 지켜보며, 오래된 우정이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서로의 길을 비추는 빛이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숭실대 안병욱 교수님, 서울대 김태길 교수님, 그리고 105세에도 여전히 글과 강연으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이끄는 연세대 김형석 교수님이 떠오른다. 이분들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지성과 우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삶의 힘이 되어 주었다. 때로는 학문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인생의 허무와 기쁨을 시처럼 풀어내며, 노년에도 여전히 젊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다. 책상 앞에서 논문을 완성하고,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그리고 저녁이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글 한 줄을 건네는 삶. 인생은 길고 때론 고단하지만, 이 우정의 끈이 있기에 끝내 우리 마음속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글로 이어지는 대화, 학문으로 엮이는 인연,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심이 우리의 등불이 되어준다. 이제야 알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을 잃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친구들의 주름진 손을 더 굳게 잡는 일이라는 것을. 그것이 우리 삶의 가장 빛나는 결이고, 오늘의 소중한 축복이다.



ㅡ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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