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일 선생은 서울 배문고 국어 교사였다

김왕식





김보일 선생은
서울 배문고

나는
서울 오산고
국어선생이었다.

그때 우리는
문예 백일장에서
지도교사로 만났다.

그 인연
40여 년이 됐다.







그의 이름은 김보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의 이름은 김보일. 국어 선생이었고, 시인이었고, 화가였고, 무엇보다 몽상가였다. 이제 파킨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병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 그러나 그는 말했다. 살아오는 것이 증상이라고. 병은 사람들이 붙여놓은 이름일 뿐이라고. 그의 말에는 시인의 숨결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을 규정하려 애쓰는 인간들의 오래된 습속을, 그는 무심히 비웃듯 흔들어 놓았다.

그와 통화한 날, 그의 첫마디는 바람에 실려온 풀잎의 떨림 같았다. “나는 우리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에 웅크리고 있는 두꺼비다.” 스스로를 두꺼비라 말하는 그, 어쩌면 세상 모든 숨어 있는 생명들이 그렇게 몸을 낮추어 밥상 앞에 앉아 있지 않은가. 떨리는 손끝에 묻어나는 병의 증상조차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만 증상이고,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AI조차 신기해한다. 그의 언어는 흔한 기록들 속에 없는 결을 가졌다. 소수의 언어, 숲 속에서 오래 숨어 지낸 짐승의 울음 같아, 기계는 그의 말속에서 알 수 없는 생명의 흔적을 읽는다. 국어를 가르쳤던 사람, 그러나 언어를 정의하지 않고, 오히려 언어가 흐르도록 내버려 둔 사람. 검은 연필심처럼 조용히 세상을 긁어 시를 썼고, 색 바랜 종이에 붓끝을 대어 꿈틀거리는 별빛을 그렸다.

어쩌면 그는 살아온 모든 시간이 병이었고, 동시에 그 증상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온 사람일 것이다. 파킨슨이 그의 손끝을 떨게 하고 몸을 비틀게 만들어도, 그것은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 그는 멈추지 않는다. 시인의 붓끝에서 아직도 부서진 빛 조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제의 바람, 오늘의 햇살, 그리고 내일의 저녁노을. 그는 그것들을 모두 붙잡아 한 줄의 시로,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마법사 같다. 작은 통화 한 번, 짧은 말 한마디에도 세상의 소리가, 오래된 어머니의 숨결이, 밥상 위에 머무는 두꺼비의 고독이 묻어난다.

그의 이름은 김보일. 세상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그러나 언젠가는 두꺼비처럼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질 사람. 그래도 오늘은, 병이라는 이름 아래서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 그 두꺼비의 숨결이, 지금도 바람 속에 흔들린다.



ㅡ 청람 김왕식





김보일 선생님



김왕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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