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자 시인의 시 「가로등 불빛」을 읽고

김왕식



□ 변희자 시인









가로등 불빛




시인 변희자





누가 걸어두었을까
밤이면 늘 같은 모퉁이에서
어둠의 커튼을 살며시 젖히고

바람이 스쳐도
묵묵히 그 자리에

눈발이 내려와
어깨를 적셔도
등불 하나, 제자리

골목 끝
그늘을 쫓아내는
무언의 보살핌이여

나에게도
그렇게 잔잔히
마음속 짙은 그늘을 씻어내는
빛 하나 있었으면

쓸쓸함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눈물조차 들키지 못하게
내 안을 비추는

가로등처럼
속 깊이 환해지는
고요한 등불 하나
내 마음 안에 깃들었으면










변희자 시인의 시 「가로등 불빛」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의 시 「가로등 불빛」은 담백한 언어로 깊은 내면의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가로등을 소재로 하면서도, 작가는 평범한 사물에 숭고한 사랑과 철학적 깨달음을 자연스레 녹여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변희자 시인의 독특한 작품 미학이자 삶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이 시의 첫 구절, "누가 걸어두었을까"라는 물음은 일상 속에 놓인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은 의문이자 경이감을 나타낸다. 작가는 가로등이라는 익숙한 사물을 통해 마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세상에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존재의 은밀한 섭리를 환기한다.
어둠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불빛을 내어주는 가로등의 이미지는, 겸허한 헌신과 조건 없는 사랑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이자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변희자 시인은 자신의 시적 공간을 매우 조용하고 절제된 어조로 채우고 있다. 화려한 기교나 요란한 감정 표현 없이도 담백한 문장 속에 인생의 깊은 여운을 품게 한다.
"바람이 스쳐도 묵묵히 그 자리에"라는 표현에서는 삶의 어떠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강인함과 고결한 정신이 드러난다.
이는 변희자 시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핵심적 미의식이기도 하다. 작가는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가슴 깊은 울림을 주는 겸손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지녔다.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눈발이 내려와 어깨를 적셔도 등불 하나, 제자리"라는 시구는 더욱 깊은 철학적 의미를 전달한다. 삶 속에서 겪는 수많은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자세를 나타내며,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사랑과 배려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작가의 인생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변희자 시인은 자신의 삶에서 겪는 아픔과 상처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것을 내면의 성찰과 깊은 사랑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이다.

후반부에서 "나에게도 그렇게 잔잔히 마음속 짙은 그늘을 씻어내는 빛 하나 있었으면"이라는 부분은 독자의 감성을 가장 섬세하게 자극하는 지점이다. 이 부분에서 시인의 목소리는 단순히 자신만의 고백이 아니라 현대인 모두가 내면 깊이 간직한 외로움과 그리움을 대변한다.
작가는 누구나 마음속에 어두운 그늘 하나쯤 품고 살아가지만, 그 그늘을 따뜻하게 비추어줄 빛 하나가 있기를 소망하며, 독자의 마음을 위로한다.

이러한 소망은 곧 "쓸쓸함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눈물조차 들키지 못하게 내 안을 비추는" 존재로 이어진다. 이 구절은 가로등의 불빛이 단순히 외적인 어둠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어둠까지도 환하게 밝히기를 바라는 시인의 깊은 내적 욕구와 연결된다. 타인에게는 들키지 않고 조용히 마음속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그런 빛을 시인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것은 변희자 시인이 평소 강조하는 사랑과 배려, 공감의 가치와도 깊이 연관된다.

마지막으로, "가로등처럼 속 깊이 환해지는 고요한 등불 하나 내 마음 안에 깃들었으면"이라는 시구에서 시인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사랑의 본질을 명확히 한다. 시인이 원하는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열정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의 어둠을 비추고 깊숙이 자리 잡아 흔들리지 않는 따뜻한 등불 같은 사랑이다.
변희자 시인은 삶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내면을 밝힐 수 있는 고요하고 단단한 사랑의 등불을 발견하고자 하며,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독자에게도 깊은 공감과 위안을 준다.

「가로등 불빛」은 변희자 시인의 작품 세계와 철학이 아름답게 응축된 한 편의 시이다. 평범한 가로등에 숭고한 사랑과 인생의 진리를 투영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삶의 가치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변희자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진정으로 품격 있는 문학적 울림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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