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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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동 시인의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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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
시인 이오동
달리던 그가 멈추었다
*36분 3초 지점에서 발견된 죽음
그가 죽자 소리 없이 그를 따르던 분침도
시침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을 몰랐다면
두 시를 향해 달리던
그들의 죽음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평생이 뜀박질이었다
1초도 실 틈 없이 앞서 뛰었지만
트랙을 돌 때마다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했다
출구는 꽉 막혀있었다
소중한 약속을 놓치고 그제서야 눈치챈 사람들
몸은 중력에 묶였어도
마음은 하늘을 가리키며 살았는데
숲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가 숫자만 세다가 죽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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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분 3초’는 시간의 객관적 측정과 인간 삶의 주관적 경험이 만나는 지점이자,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한 개인의 유한성과 운명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시적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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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질주, 존재의 정지
— 이오동 시 「초침」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오동 시인의 시는 한 차원 높고 깊다.
하여 난해하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이번 시「초침」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시는 시간의 무한한 흐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운명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걸작이다.
시인은 일상적이고도 보편적인 시곗바늘 ‘초침’을 통해 삶의 질주와 멈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그 속에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숭고를 동시에 담아낸다.
‘달리던 그가 멈추었다’라는 도입부는 삶이라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한순간 정지하는 치명적 순간, 곧 죽음을 함축한다.
이 멈춤은 단지 한 개인의 종말이 아니라, 모든 시간과 존재가 잠시 숨을 고르는 거대한 정지로 읽힌다. 이어서 ‘36분 3초 지점에서 발견된 죽음’이라는 구체적 숫자를 언급함으로써, 무한한 시간 속의 한 점으로서 한 생애가 예리하게 포착된다.
이는 시간을 객관적으로 재는 도구로서의 시계와 달리, 삶의 유한함과 죽음의 불가피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시인의 예민한 시각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죽자 소리 없이 그를 따르던 분침도 시침도 숨을 거두었다’는 표현은 초침만의 죽음이 아니라, 시간 자체가 그의 죽음과 함께 멈추는 듯한 강렬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는 곧 한 인간의 삶이 그 자체로 세계의 리듬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며, 개인과 우주가 맞닿는 순간을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그는 평생이 뜀박질이었다. 1초도 실 틈 없이 앞서 뛰었지만 트랙을 돌 때마다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했다’라는 구절은 삶의 부단한 노력과 무의미한 반복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는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인간 조건과 깊은 공명하며, 인간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출구는 꽉 막혀있었다’는 절망적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절망 속에서도 ‘몸은 중력에 묶였어도 마음은 하늘을 가리키며 살았는데’라는 문장은 인간 정신의 고결함과 자유 의지를 강렬하게 제시한다.
이 대조는 시 속에서 절제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독자로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희망과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숲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가 숫자만 세다가 죽었다고 말했다’는 구절은 현대 사회의 단편적이고 기계적인 삶의 인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여기서 ‘숲’은 삶의 전체 맥락과 깊은 의미를 상징하며,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 숫자에 매몰된 세태를 풍자한다. 시인은 인간 삶의 복합성과 내면의 풍요로움을 포착하며, 표면적인 삶의 측정에 그치는 현실을 경계한다.
다만, ‘트랙을 돌 때마다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했다’는 표현은 삶의 반복과 부조리를 강조하는 좋은 비유임에도, 다소 직설적이고 진부한 느낌을 줄 수 있어 시적 이미지로 좀 더 함축적이고 은유적으로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끝없이 빙글 도는 궤도 위, 나아가려다 되돌아서는 발걸음’처럼 시적 리듬과 상상력을 더해 표현한다면, 작품 전체의 미학적 완성도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또한 ‘출구는 꽉 막혀있었다’라는 구절 역시 ‘꽉’이라는 단어가 다소 낯설고 무거운 인상을 주어, ‘벽으로 막힌 끝없는 고리’ 혹은 ‘막힌 미로’ 등의 보다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교체하는 것이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오동 시인의 미의식은 철저한 절제와 정제된 언어 속에서 빛난다. 단어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선택되어 의미의 층위를 쌓아 올리고, 그 속에 삶과 죽음, 시간과 존재에 관한 깊은 사유가 응축되어 있다.
시인은 시곗바늘이라는 일상 속 사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도달하며,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 정신의 숭고함과 자유를 잃지 않는 태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요컨대, 「초침」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시간의 흐름에 빗대어 예리하게 조명하는 동시에, 그 속에 숨겨진 존재론적 물음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현대시의 걸작이다.
시인은 끊임없는 시간의 질주 속에서 닫힌 출구를 마주한 인간의 무력함을 담담히 노래하면서도, 그 한계 너머로 솟아오르는 마음의 자유와 이상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는 이오동 시인이 지닌 삶의 가치철학—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하되, 그 안에서 인간 정신의 존엄과 숭고함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온전히 반영한다.
따라서 「초침」은 단순한 시간의 기록을 넘어,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과 철학적 성찰, 그리고 인간 내면의 불멸성을 동시에 담아내며, 독자로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사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학적으로는 절제된 언어미와 풍부한 상징성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과 감성을 극대화하며, 철학적으로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가능성을 통찰하는 고귀한 성취를 이룩했다.
이로써 이오동 시인의 「초침」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서정시로서, 오래도록 기억되고 연구되어야 할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