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산양 백영호 시인의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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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발톱 깎으며
시인 산양 백영호
늙어 앙상한 발 보듬어
엄지 중지 새끼발가락
차례로 발톱을 깎는다
평생 이 두 발로 딛고
흙을 가꾸며
흙을 이겨 이겨 살아 낸 시간
누렇게 변색된 두터운 발톱
모질게 버텨 온 세월을 깎는다
저 발이 아장아장
걸음마했을 땐
집안 어른 큰 박수받았고
이십 대엔 백 미터
십오 초 대 질주도 있었고
뻘구덩 논에 모내기하며
이 식구 밥 먹여 살렸지
이제 그 통통했던
살점과 핏빛
자식에 다 내려주고
가죽과 뼈
그리고
모난 발톱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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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발톱, 삶의 자취
― 백영호 시인의 『아버님 발톱 깎으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백영호 시인은 흙 속에 뿌리내린 삶을 시로 일구는 장인匠人이다.
『아버님 발톱 깎으며』는 한 노년의 아버지 발에 깃든 시간의 퇴적층을 세심한 붓질로 그려내어,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 발톱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닌, 마치 세월의 나이테처럼, 거칠고 단단한 삶의 흔적들을 꼼꼼히 담고 있다.
누렇게 빛바랜 그 두꺼운 껍질은 인고의 무게를 견디며 모진 바람과 비를 뚫고 살아온 아버지의 삶의 비늘이다.
시는 ‘늙고 앙상한 발’을 품에 안고 정성껏 발톱을 다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 손길은 마치 바람에 부서진 나뭇가지를 다독이는 숲지기의 손처럼 조심스럽고 따뜻하다.
한 치 한 치 발톱을 깎아내며 마치 흐르던 강물이 잔잔해지듯, 삶의 격동을 잠재우고 고요한 회상의 강으로 우리를 이끈다.
중간 부분에 이르러, 시인은 아버지의 생애를 섬세한 모자이크처럼 풀어놓는다.
아장아장 떼를 걷던 아이의 첫 발걸음은 집안의 박수갈채와 같았고, 젊은 시절의 민첩한 달리기는 시간의 바람결을 가르는 듯 날카로웠다.
그리고, 뻘구덩 논밭에 뿌린 모의 자태는 가족을 위한 고된 헌신과 그늘 없는 땀방울로 살아 숨 쉰다.
이 모든 순간은 발자국처럼 시에 새겨져, 삶이라는 긴 여정을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밟아가게 한다.
후반부에 이르면, 시는 ‘살점과 핏빛’이 자식에게로 흘러내리고, ‘가죽과 뼈’ 그리고 ‘모난 발톱’만이 남은 신체를 조용히 바라본다.
이는 마치 가을 낙엽이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 앙상함 속에도 한 해를 견딘 나무의 뿌리 깊은 생명력이 내재되어 있듯, 그 발톱은 인생의 굴곡과 희생, 그리고 사랑의 최후의 보루로 존재한다.
노년의 몸이 지닌 허무와 쓸쓸함이기도 하면서,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영원의 자취이기도 하다.
백영호 시인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인류 보편의 존재론적 진실을 찾아낸다.
‘발톱 깎기’라는 소박한 행위가 쇠락하는 육체를 보듬고, 그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삶의 존엄과 애정을 지켜내는 상징적 의식으로 승화된다.
그가 빚어낸 언어는 다듬어지지 않은 진흙 같으면서도, 그 속에 반짝이는 진주처럼 정갈한 감정을 품고 있다.
삶의 겹겹이 쌓인 시간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깊고 넓다.
‘모난 발톱’이라는 구체적 이미지에 깃든 미적 태도는 불완전함을 긍정하며, 피할 수 없는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다움의 빛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성찰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허무를 넘어서는 용기와 위로를 선사한다.
요컨대,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시간성, 사랑, 희생, 그리고 존엄을 품은 깊은 명상록이다.
백영호 시인의 따스한 언어와 고요한 사유는 세대를 잇는 사랑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며, 우리 각자의 삶을 조용히 비추는 등불이 된다.
삶과 죽음, 젊음과 노년, 부모와 자식의 애환을 아우르는 이 시는, 한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사려 깊게 탐구한 문학적 보석이라 할 만하다.
―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