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의 시, 멋이라는 이름으로

피카소 ㅡ 김왕식








비대칭의 시, 멋이라는 이름으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눈은 코에 붙어 있고, 귀는 턱에 걸려 있다. 균형의 반란이다. 피카소는 이를 ‘미’라 했다. 이 불균형의 질서, 어긋난 배열 속에서 튀어나온 생명력—그것이 멋이다. 세상은 단정치 않아서 아름답고, 인간은 비대칭이어서 창조적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진리는 늘 균형 너머에 있었다.

바람은 한쪽으로만 불고, 나뭇잎은 한 방향으로만 흔들린다. 강물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으며, 산의 능선도 좌우 대칭을 배반한다. 새 한 마리 날아오를 때, 날갯짓은 한쪽이 먼저 접히고, 한쪽이 늦게 뜬다. 그 작은 어긋남, 그 찰나의 틈에서 비로소 날아오름이 시작된다. 아름다움이란 그 틈의 힘이다.

멋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식이나 법칙이 아니다. 일정한 틀을 벗어난 찰나의 용기, 불균형을 껴안은 자유의 리듬이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우리는 직감한다. 멋은 늘 예상 밖에서 나타나고, 정해진 선을 넘는 순간에 찬란하게 빛난다. 길게 맞춘 양복보다, 무심히 접힌 셔츠 소매 하나가 더 멋스러운 것처럼.

비대칭은 일상의 숨겨진 미학이다. 나뭇가지가 뻗어 나가는 방향도, 꽃잎의 겹겹이 펼쳐지는 각도도, 그 모든 것이 정확한 비례를 거부한다. 시인의 언어도 그러하다. 문장은 리듬을 배반하고, 의미는 문맥을 거슬러 튀어나온다. 그 튀어나온 언어, 그 흐름을 찢고 나오는 감정이 진짜 시다.

우리는 살아가며 정답을 배우지만, 멋은 그 정답에서 벗어난 오답의 자유로움 속에서 발생한다. 예술가들은 왜 파괴된 선과 일그러진 형태를 그리워하는가? 피카소가 말한 ‘미’는 그것이다. 해체되고 어긋난 것 속에 숨겨진 진실. 계산된 균형보다 우연의 비틀림이 더 강렬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정신 또한 그러하다. 인간의 감정은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연민이 한 마음 안에서 동시에 겹친다. 선과 악이 분리되지 않고, 진심과 가식도 한데 얽혀 있다. 그 뒤엉킴을 그대로 끌어안는 용기, 그것이 인간적 멋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너무 잘 맞춘 계획은 삶의 낯섦을 가둔다. 불완전한 구두짝, 비뚤게 눌러쓴 모자, 어깨너머 무심히 건넨 인사, 그 모든 것에서 우리는 ‘자기만의 멋’을 배운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멋은 멀어지고, 허용과 여백 속에서 멋은 피어난다.

멋은 단정하지 않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이며, 정해지지 않은 울림이다. 시도 예술도 그러하다. 마치 인생처럼, 비틀리고 깨진 자리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누군가의 발끝에서 삐끗한 리듬이 오히려 새로운 음악이 되고, 반듯하게 깔린 노랫말보다 어눌하게 떨리는 말 한마디가 더 깊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래서, 비대칭은 멋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유성이고, 자연의 자유다. 거울 속 좌우 대칭의 얼굴이 아니라,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진짜 멋이다. 우리는 자연의 비대칭성에서 삶의 다양성과 유일성을 배우며, 그것이야말로 예술과 인생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피카소는 그걸 먼저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비대칭을 멋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하나, 그것을 사랑한 자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을 배울 차례다.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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