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괴테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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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라, 그대는 참 아름답구나
— 파우스트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람루, 늦은 오후.
대숲 너머로 햇살이 길게 기울자, 스승은 고요히 차를 따랐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제자 달삼은 검은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마루로 올라왔다.
“스승님, 이거... 다 읽었어요. 『파우스트』 말입니다.”
스승이 잔을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
“허, 그 두꺼운 걸 다 읽었단 말이냐. 어땠느냐?”
달삼은 숨을 고르더니, 책장을 펴며 말했다.
“처음엔 좀 어려웠어요. 악마랑 계약하고, 사랑하고, 또 망가지고... 근데 읽다 보니 자꾸 제 얘기 같아서요.”
스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파우스트는 딱히 악인이 아니야. 그보다는... 인간이지.”
달삼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런데요. 왜 파우스트는 그토록 방황했을까요? 이미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데, 왜 계속 ‘더’를 바라죠?”
스승은 마당의 감나무 가지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달삼아, 사람 마음은 바가지 같단다. 물이 차도 찼는 줄 모르고, 늘 뭔가 부족한 듯 느끼지. 파우스트도 그랬어. 젊음, 사랑, 지식, 쾌락…
다 맛보았지만, 결국엔 진짜 의미를 못 찾은 거지. 그러니 악마에게도 속아 넘어가는 거다.”
달삼이 물었다.
“그럼, 진짜 의미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스승은 찻잔을 달삼 앞에 밀어주며 말했다.
“자, 이 찻잔 속에도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순간.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말하지 않느냐.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그게 결국 자기 인생에서 진짜 의미를 찾은 순간이었어. 그 순간, 구원이 온 거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책 속의 삽화를 가리켰다.
“여기요. ‘발푸르기스의 보따리’라는데, 좀 이상했어요. 왜 이런 걸 뺐을까요?”
스승이 웃었다.
“그건 괴테가 당시의 눈치를 본 거다. 사탄 숭배, 마녀 처형, 남근 상징... 너무 노골적인 장면이 많았지. 하지만 그걸 빼고 나니, 괴테 스스로도 미련이 남았던 거야. 인간의 밑바닥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욕망의 맨얼굴 말이다.”
달삼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의 그림자도, 빛도 모두 보여주고 싶었던 거네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괴테는 문학으로 연금술을 했단다. 진흙 속에서 황금을 뽑아내듯, 인간의 밑바닥에서 고귀한 가능성을 길어냈지. 그러니 이 작품이 200년이 지나도 살아 있는 거야.”
달삼은 눈을 감고 천천히 말했다.
“스승님, 저도 언젠가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스승은 잔을 들며 말했다.
“그 말이 쉬운 줄 아느냐? 그 말은, 모든 걸 걸고도 아깝지 않은 순간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욕망을 넘어선 기쁨, 자기 아닌 누군가를 위한 시간, 그게 문득 아름답게 다가올 때 비로소 입 밖에 나오는 말이지.”
달삼은 그 말을 마음속에 곱씹었다. 바람결에 대숲이 흔들리고, 차향은 다시 피어올랐다. 스승은 마지막 잔을 따라주며 이렇게 말했다.
“괴테는 우리에게 문장을 남겼지만, 너는 삶으로 그 문장을 써야 한다. 『파우스트』는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너의 방황, 너의 선택, 너의 고백 안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날 저녁, 달삼은 책을 다시 펼쳤다. 이제 그 속의 문장들이 단지 활자가 아닌, 자신의 삶으로 건너오는 듯했다. 인간은 방황하는 동안에만 인간이 되고, 그 방황 속에서 비로소 구원을 만난다는 괴테의 진실이, 소년의 마음에 잔잔히 내려앉았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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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님께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청람루에서 스승과 제자 달삼이 나눈 '파우스트'의 대화록을 정독한 후, 저는 한동안 그 여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마치 한 잔의 오래된 차가 가슴 깊숙이 따뜻하게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문학을 삶으로 옮기고, 철학을 일상 속 숨결로 번역해 내는 선생님의 솜씨에 다시금 경탄하며, 감히 이 짧은 글을 올립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저 역시 대학 시절부터 여러 번 접했지만, 매번 그 의미는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때로는 지식에 대한 집요한 갈망으로, 때로는 쾌락에의 유혹으로, 때로는 문명 전환기의 상징으로 읽혔으나, 이번처럼 “사람의 말”로서, 스승과 제자의 대화로 풀어낸 장면은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그 유명한 선언이, 철학적 언어가 아닌, 두 사람이 마루 위에서 나눈 대화 속에 조용히 녹아들자, 그 문장이 처음으로 제 심장 안에서 울렸습니다.
달삼이라는 인물은 단지 제자 이상의 상징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혼란한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청년이며, 무수한 정보와 속도 속에서 의미를 잃고 떠도는 현대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달삼에게 스승은 문학이라는 등불을 내어줍니다. 문학은 더 이상 고전 속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제안되었고, 그 가르침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존재의 뿌리를 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특히 “욕망을 넘어선 기쁨”,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라는 스승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 경제 사회가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명징한 통찰이라 느껴졌습니다. 자본과 효율, 성과 중심의 경제 담론 속에서 사람의 온기가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 속에, 선생님의 글은 ‘인간적 경제학’이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괴테는 문장을 남겼지만, 너는 삶으로 그 문장을 써야 한다”는 마지막 말은, 그 자체로 교육과 리더십의 본질을 압축한 선언이었습니다. 교단에 선 자, 혹은 어떤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 선 자가 잊지 말아야 할 태도이자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장은 제가 학생들과 나누는 강의의 서두에 앞으로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기도 합니다. 문학이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선생님은 놀라울 만큼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글이 빛나는 지점은, 문학과 철학, 인간과 경제, 시간과 영혼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교차하면서도, 단 한 줄의 군더더기 없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다섯 줄 오선 위에서 화음이 정돈되듯, 각각의 메시지가 명징한 음표처럼 다가왔습니다. 제가 ‘고전의 현대화’라는 과제 속에서 늘 고민해 온 바를, 선생님께서는 이 짧은 산문 속에 완성된 형태로 구현하신 것입니다.
이 글은 단지 '파우스트'에 대한 재해석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놓치고 있는 가치들—즉, 기다림의 미학, 방황의 품격,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고요한 성찰이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신 이 겸허한 사유는, 제가 경제학자로서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경제학과도 결을 같이함을 느낍니다.
다시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생님의 문장은 늘 따뜻하면서도 단단하고, 날카로우면서도 품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고전 속에 숨은 생명과 온기를 느끼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김철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