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파우스트'가 현대에게 전하는 영혼의 거울

김왕식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 괴테 '파우스트'가 현대에게 전하는 영혼의 거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괴테의 '파우스트'는 단지 한 인간의 이야기도, 한 시대의 기록도 아니다. 그것은 문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비추는, 사유의 장대하고도 집요한 탐색이다. 그 거울 앞에 선 파우스트는 단지 악마와 계약한 인물이 아니라, 지식과 욕망, 고뇌와 구원을 교차하는 근대적 인간의 원형이며, 오늘날의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파우스트'는 괴테 생애 전반에 걸쳐 완성된 작품으로, 한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걸고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문명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중세적 신비주의와 기독교적 윤리, 연금술의 마력과 그리스-로마 신화의 고전성, 그리고 자본주의와 계몽주의, 시민 사회와 봉건 잔재의 충돌이라는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한 역사적 배경이 아니라, 괴테가 문학이라는 도가니에서 정련한 인간 정신의 알레고리로, 시공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으로 되살아난다.

파우스트는 지식과 진리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 갈망은 곧 자만과 공허로 이어지고,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으로 비극적 여정이 시작된다. 이 장면은 바로 현대인이 겪는 지식의 과잉과 진실의 부재,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는 우리들의 초상을 연상케 한다. 파우스트가 지식만으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는 그 지점에서, 오늘의 인간 역시 문명과 과학이 해결해주지 못한 삶의 본질적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파우스트』의 본질은 끊임없는 ‘시도’에 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은 방황하는 존재이며, 바로 그 ‘노력하는 동안’에만 인간답다고 역설한다. 현대인 또한 이 불완전함 속에서 허둥대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방황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됨의 증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괴테 문학의 위대함이다. 파우스트는 쾌락을 좇지만, 진정한 만족은 타인과 함께하는 공동의 건설, 즉 “방파제를 세우고 새로운 땅을 개간하는 일”을 통해 비로소 얻어진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외면하기 쉬운 ‘공공의 가치’와 ‘연대’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괴테가 생전에 미풍양속을 염려해 배제했던 ‘발푸르기스의 보따리’ 또한, 억눌린 욕망과 사회의 금기를 문학적으로 직면한 용기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사탄의 음울한 미학과 인간 내면에 도사린 원초적 욕망, 그리고 그것을 억누르고자 했던 이성의 그늘이 공존한다. 이 미출간 원고가 수록된 판본은 괴테 정신의 ‘음지’를 조명하며, 문학이 단지 빛만이 아닌 어둠 또한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통찰을 던진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이 한 문장은 파우스트의 전 여정을 응축한다. 그것은 인간이 삶의 한 장면 앞에서 순간적인 완성을 느낄 때 흘리는 탄식이자, 동시에 절망의 문턱에서 발견한 희망의 외침이다. 현대의 삶은 속도와 성과로 매 순간 ‘지금’을 놓치게 만들지만, 괴테는 오히려 그 순간에 내재된 영혼의 진동을 붙잡으라고 말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쾌락이 아닌, 나와 타자, 개인과 세계가 맞닿는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괴테의 문학은 삶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욕망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구원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마치 파우스트가 그레트헨을 통해 구원을 향해 나아갔듯, 문학을 읽는 독자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요컨대, '파우스트'는 삶이라는 실험실에서 계속 쓰이고 있는 살아 있는 텍스트다. 괴테는 단순히 한 명의 대문호가 아니라, 시대를 관통한 지성의 연금술사이며, 인간 정신을 탐색하는 위대한 사색자였다. 그의 문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시험하고 있으며, 동시에 위로한다. “방황하라. 그러나 멈추지 말라.” 이것이 바로 괴테가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문장이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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