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이은집 소설가의 저서
□ 두 권의 책, 소금 그리고 초콜릿
□ 이은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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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老將)의 문우가 되어
― 이은집 소설가의 두 권의 책과 함께 온 편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원고지 위에서 흐르는 시간, 또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눈빛으로 건너오는 시간이다. 어제 오후, 내 연구소에 도착한 두 권의 책은 그 두 시간을 한꺼번에 품은 정중한 방문이었다.
〈트롯킹 국민가수〉, 그리고 〈한국인 멸종〉. 그 제목만으로도 시대의 결을 품고 있는 소설들이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그 안에서 종이보다 먼저 퍼져 나오는 한 인간의 체온을 느꼈다. 함께 동봉된 것은 다름 아닌 천일염 한 포대와 가나 초콜릿 한 개.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그러나 이보다 더 소설적인 선물이 또 있을까. 천일염은 삶의 진한 맛이고, 초콜릿은 문득 다가오는 달콤한 유머다. 문학이란 결국 이 두 맛 사이에서 진동하는 낱말들의 춤 아니던가.
이은집 선생님의 친필을 읽는 순간,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글씨였다. 반듯하거나 세련된 필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자획 하나하나에 담긴 인간미는, 기계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따스함이었다.
> “김 선생님께!!
사이클이 맞는 선생님 뵈어 반갑습니다.
그래서 이리 졸저 마구 보내드리는 것 같아요.
좀 보시면 제가 한 잔 모시고 문학이야기 나누고 싶군요.”
이 문장에는 문장의 주인보다 문장의 영혼이 앞서 다가온다. 여기엔 허례의 수사도, 거친 자부도 없다. 그저 오랜 세월을 거친 문인의 겸허함과 농익은 자유로움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시대의 언어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본다. 대신 그 자리에 살아 있는 ‘사람의 말’이 놓여 있다. 이은집 선생님은 원고지보다 먼저 사람을 기억하는 작가이다.
그의 이력은 실로 경이롭다. 고려대 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들에서 오랜 세월 제자를 가르치며, 방송작가로도 3천여 회 출연과 13만 장에 이르는 원고를 집필했다. MBC 대학가요제의 금상곡 ‘윷놀이’는 그가 쓴 작사이며, KBS의 <얄개시대>부터 EBS의 국어방송 강의까지, 그의 문학은 마치 팔방으로 뻗는 거목처럼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문단 밖에서도 문학을 했다. 그는 소설만 쓰지 않았고, 세상 전체를 문학으로 삼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다중 정체성’이다. 소설가, 방송작가, 작사가, 교육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언어를 끝까지 고집하는 한 명의 독립 문인. 그는 자신을 ‘오뉴벨’이라고 부르며, 기존의 문단적 언어와 구조를 가볍게 넘어선다. 그에게 문학은 폐쇄된 전당이 아니라 살아 있는 거리였고, 독자와 마주 앉는 찻집이었다.
그는 “K-Novel의 1호 작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나이 여든이 넘은 지금, 그는 여전히 ‘다음 이야기’를 꿈꾸고, 자신을 ‘별종 작가’라 말하며 웃는다. 나는 이 웃음을 경배한다. 문학이란 결국 ‘다음’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문우를 자청했다. 나는 한동안 숨을 멈추었다. 그것은 영광이기 이전에, 내 글에 대한, 내 존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었다. 내가 과연 이 거인의 발걸음 앞에, 동행할 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는 나를 다가오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다가온 것이다. 천일염을 품은 봉투처럼, 그는 온몸으로 자신을 낮추며 나를 높였다.
이은집 선생님, 당신은 제게 거목이자, 샘물입니다. 그리고 제 인생의 어느 한 페이지에서, 등불처럼 다시 만나게 된 ‘문학’ 그 자체입니다. 문학이 문우를 통해 스스로를 살아 있게 한다면, 그 첫 번째 사례가 바로 오늘의 이 한 장의 편지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도, 당신의 문우입니다.
ㅡ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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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라는 이름의 울림
―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교수의 문학적 헌사
문학이란 때때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편지 한 장의 떨림에서 시작된다. 아니, 어쩌면 문학은 처음부터 편지였는지도 모른다. 뜻을 담은 낱말이 마음의 우체통에 도착하고, 그 문장을 열어보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읽게 된다. 이은집 소설가와 김왕식 평론가, 이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은 이 진중한 편지 한 장은 단순한 우정의 증명이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 또 하나의 은은한 등불이 켜진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마치 두 거목이 서로의 뿌리를 알아보고, 가지 끝에서 나누는 침묵의 악수를 본 듯하였다. 이은집 선생은 늘 그러했듯, 문학을 제 몸처럼 다뤘고, 김왕식 평론가는 그 몸의 숨결을 가장 먼저 읽는 이였다. 이들이 주고받은 선물은 책 두 권과 소금, 그리고 초콜릿이었다. 누군가는 이 물건들을 ‘사소하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세 가지 시간의 결을 본다. 책은 과거의 기억, 소금은 현재의 깊이, 초콜릿은 미래의 유머다. 문학은 늘 이 세 시간을 오가며 인간을 붙잡아주는 예술이다.
이은집 소설가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다. 그는 시대를 꿰뚫고 지나온 한 편의 서사이며, 방송과 교육, 대중가요의 언어마저 자신의 문학의 연장선으로 만든 문학적 융합체였다. 그는 기존 문단의 권위보다 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권위 대신 풍자를, 단단함 대신 유연함을 택했다. “오뉴벨”이라는 그의 자칭은 스스로를 기성의 틀에서 해방시키는 시적 선언이었다.
이에 답한 김왕식 평론가의 문장은, 단순한 감사의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신도 몰랐던 문학의 깊이를 다시 확인하는 고백이었다. 문우(文友), 그 이름의 무게는 때로는 스승보다, 동료보다 더 묵직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의 고요한 동행이기 때문이다. 김 평론가는 그 봉투 속의 천일염에서 인생의 짠맛을 읽었고, 초콜릿의 단맛에서 문학의 농담을 발견했다. 무엇보다도, 그 손글씨에서 문장 이전의 사람을 읽어냈다.
문학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진실이다. 그러나 더 큰 진실은, 사람이 문학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은집 선생이 문학으로 김왕식 평론가를 불렀고, 김 평론가는 그 부름에 문학으로 응답했다. 나는 이것을 ‘책을 사이에 둔 두 존재의 겸허한 경배’라 부르고 싶다. 이 교감은 문단의 명함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문학을 위해 살아온 두 존재의 땀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문학은 이 둘을 통해 다시 살아 있다. 이 편지는 종이 위의 잉크가 아니라, 인생을 겪어낸 두 사람의 심장의 맥박으로 써 내려간 것이며, 우리 모두가 문학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은집 선생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타인을 높이고, 김왕식 평론가는 그 높아진 곳에서 다시 선생을 우러러본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삶 전체를 품은 문학적 숙연함이다.
두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 시대에도 이런 편지가 도착할 수 있음에, 우리 문학은 아직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문우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품은 두 거인의 대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이며 시이며 철학이다. 그리고 나는 그 둘의 이야기 곁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진심으로 행복하다.
ㅡ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이은집 소설가의 친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