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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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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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눈으로 삶을 다시 보다
―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에 관한 성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20세기 인문학의 가장 깊은 성찰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는 단순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현대 문명의 생존을 건 긴급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삶의 방식이 "소유 중심(having mode)"에서 "존재 중심(being mode)"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소유는 외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삶이며, 존재는 내면의 성장과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에 뿌리내린 삶이다.
프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소유하는 자’로 전락시켰다고 진단한다. “나는 집을 가진다”, “지식을 가진다”, “사람을 소유한다”는 언어 습관 자체가 이미 인간관계를 수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마저도 '소유할 수 있는 감정'으로 오해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지배하거나 통제하려 든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즉 ‘함께 있음’에서만 가능하다.
‘존재 중심’의 삶은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비경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까운 삶이다. 프롬은 존재의 삶이란 “자신을 열어 진실한 관계를 맺고, 깊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며, 사랑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깨닫는 행위”라고 말한다. 즉 존재의 삶은 ‘되는 중의 삶’, 곧 계속해서 자신을 갱신하고 타자와 연결되는 과정이다. 반면 소유는 ‘고정된 상태’, 정지된 자아로서, 변화와 성장을 거부한다.
우리는 이 이론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예컨대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소유 중심의 관점에서는 “내 자식”이라는 말로 시작해, 그 삶을 통제하고 기대를 주입한다. 반면 존재 중심의 부모는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며, 그들의 자율성과 고유성을 기른다. 또 교육 현장에서 학생에게 지식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삶 속에서 실천하게 하는’ 것이 존재 중심의 교육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유 중심의 인간은 지위, 연봉, 성과를 ‘쌓아가는 것’에 집착하지만, 존재 중심의 인간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를 더 중요시한다. 그는 팀원과의 관계, 일의 윤리성, 내면의 만족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
또한 소비문화 속에서도 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유의 삶은 ‘더 많은 물건’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받으려 하지만, 존재의 삶은 ‘적게 소유하며 더 깊이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미니멀리즘, 슬로우 라이프, 공동체적 삶 등은 이러한 존재 중심의 실천 예라 할 수 있다.
프롬은 이 책에서 단순히 철학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한 ‘문화적 진화’를 호소하고 있다. 왜냐하면 소유 중심의 삶은 필연적으로 경쟁과 탐욕, 고립을 낳고, 결국 인간성의 붕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존재 중심의 삶만이 우리를 서로 연결하고, 타자를 존중하며, 지구와 조화를 이루는 길이다.
결국 프롬의 메시지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삶. 우리는 날마다 이 두 질문 사이에서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곧 우리의 삶 전체를 결정짓는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아이를 기를 때,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눌 때—그 순간마다 ‘소유의 언어’ 대신 ‘존재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프롬은 우리에게 삶을 바꾸는 철학이란 거창한 명제가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순간의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가르쳐 준다.
그의 말처럼, “삶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이 진실이 삶 속에 실현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