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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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
시인 주광일
여든 넘으면
흐릿하게나마
저 세상 끝자락
보이길 바랐는데
희미하게나마
하늘의 소리
들리길 바랐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굵은 빗줄기
천둥소리
두렵구나
자 이제 나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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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 앞에 선 시인의 침묵
― 주광일 시인의 시 세계와 존재 인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시는 말보다 침묵이 깊고, 감정보다 사유가 넓다.
노시인의 시는 시간의 무게를 품고 있지만, 결코 눌리지 않는다.
그는 살아온 시간보다 다가올 ‘한 순간’을 더 고요히 응시하며, 죽음이라는 끝이 아니라 삶이라는 길의 끝자락을 시로 건넌다.
이번 시 '천둥소리'는 주 시인의 그런 시적 세계를 응축한 내면적 독백이자, 마지막 생의 언저리에서 피워 올린 존재의 물음표다.
시의 화자는 ‘여든 넘은’ 노인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지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풍경이 달라지는 일이다. 시인은 “흐릿하게나마 / 저 세상 끝자락 보이길 바랐는데”라고 고백한다. 이 구절은 죽음을 향한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의 형상’을 바라보려는 노시인의 정직한 시선이다. 세속을 벗어난 투명한 감각으로 그는 삶의 이면, 존재의 경계에 다가가려 한다.
여전히 그것은 “희미하게나마 / 하늘의 소리 / 들리길 바랐”을 뿐, 닿지 않는 세계다. 여기서 '하늘의 소리'는 종교적 계시이자 존재의 본질에 대한 암시일 수 있다.
시는 돌연히 변주된다. “오늘은 새벽부터 / 굵은 빗줄기 / 천둥소리”가 들린다. 이 자연의 위력은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다. 외려 그것은 존재의 문턱 앞에 선 시인에게 주어진 어떤 ‘신의 징후’다. 천둥은 단지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환기하는 비의적 상징이며, 마지막 여정 앞에 울려 퍼지는 존재의 경고음이다. 그리고 시인은 고백한다. “두렵구나.”
이 한 줄에서 노시인의 진심이 터진다.
삶을 정리할 시점에서 마주한 두려움, 그것은 육체적 공포가 아니라 내면의 떨림이다. 세상을 향해 말없이 살아왔던 이가 처음으로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이 시의 미덕이다.
이 시는 담담한 어법 속에 숭고한 불안을 숨기며, 그 불안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직시하게 한다. 노년은 결코 끝맺음의 평안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더 깊은 물음과 더 고요한 떨림으로 가는 길이다.
“자 이제 나 / 어쩐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인의 평생 사유가 도달한 절정의 질문이다. 이것은 단지 죽음을 앞둔 자의 푸념이 아니다. 이는 사랑했고, 생각했고, 감내했던 한 인간의 언어로 남긴 마지막 화두다. 누구도 대신 답할 수 없는 질문, 누구나 결국 만나야 할 질문 앞에 시인은 겸허히 서 있다.
주광일 시인의 시 세계는 늘 실존의 골짜기를 응시해 왔다.
법조인의 이력, 노년에 접어든 고독한 생, 민족과 시대를 껴안은 지식인의 자의식은 그의 시에 깊이 배어 있다. 그는 결코 세상을 규탄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했고, 그 침묵 속에서 삶과 죽음을 사유했다. 그의 시는 무장된 언어가 아니라, 벗은 언어다.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진실을 담는 시.
하여 그의 시는 단단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 그는 거대하지 않은 사유를 통해 더 큰 진실에 도달했다.
“천둥소리 두렵구나”는 말은 삶의 끝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고백이다.
그러나 그 고백은 나약함이 아니라, 위엄 있는 인간의 태도다.
주광일 시인은 이 한 편의 시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끝을 어떻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 물음은 천둥소리처럼 독자의 가슴에 깊게 울린다. □
ㅡ 청람 김왕식
□ 주광일 시인
1943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1965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제5회 사법시험 합격하였다.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6년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을 수료하였다.
검사로 있으면서 면도날이라고 불릴 만큼 일처리가 매섭고 깔끔하며 잔일까지도 직접 챙겨 부하검사들이 부담스러워했다. 10.26 사건 직후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돼 김재규 수사를 맡았으나 "개혁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원대복귀되기도 했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을 때 자신이 직접 언론 브리핑을 했던 인천 북구청 세금 횡령 사건, 인천지방법원 집달관 비리 사건 등 대형 사건을 처리했다.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차장검사로 있던 1989년 9월 18일부터 나흘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지역법률가회의에 참석하여 '한국경제 발전 과정에 있어서의 외자도입법의 역할'이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있던 1992년 8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다닐 때 써두었던 사랑을 주제로 한 시 60편을 묶은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도서출판 빛남) 등 다수의 시집을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