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림의 유전학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잃어버림의 유전학
― 가장 중요한 그것도 신체에 달리지 않았으면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저마다 인생에 한두 가지쯤은 놓치고 사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시간을, 누군가는 인연을, 또 누군가는 물건을 놓친다. 나의 경우는 유독 ‘물건’이었다. 잃어버림이 습관처럼 따라붙은 생이었다. 최근 며칠 사이, 수십 년을 함께한 시계가 내 손목을 이탈했고, 어제는 지갑까지 조용히 퇴장했다. 신분증과 카드들이 질서 정연히 잠들어 있던 그 지갑은, 마치 이별을 예감이라도 한 듯, 이별의 말 한마디 없이 내 곁을 떠났다.

한순간, 생각이 멈춘다. 혹시 이건 건망증인가, 아니면 노화의 신호인가. 그러나 다시금 기억의 밑줄을 따라가 보면,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젊은 날부터 내 주머니는 작별이 잦았다. 지갑은 늘 다른 곳에서 나를 기다렸고, 우산은 비 내리는 날만큼이나 자주 떠났다. “내가 뭘 잃어버렸더라?” 하는 물음은 내 일상의 서문이었고, 그 답은 대개 이별의 목록이었다.

물건을 잃는다는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삶의 태도이고, 어떤 면에서는 철학일지도 모른다. 애써 붙잡지 않고, 떠나면 흘려보내는 삶. 비워짐 속에서 오히려 가벼워지는 법을 배우는 일. 값비싼 물건일수록 그 상실은 무거울 법도 한데, 나는 이상하리만치 덤덤하다. 그 물건에 쌓였던 시간과 추억이야말로 가장 귀했던 것인데, 그것조차 이제는 손을 놓는다.

문득, 내 막내아들이 떠오른다. 그도 나를 꼭 빼닮았다. 열쇠는 자주 유랑을 떠나고, 스마트폰은 세탁기 속이나 밥솥 위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삶은 늘 ‘찾는 일’로 분주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미안하다. 이런 걸 물려줘서.” 하지만 곧이어 반문한다. “내가 전부 그런가?” 첫째 아들은 또렷하다. 꼼꼼함이 습관이고, 정리가 본능인 사람. 결국 내 안에도 질서와 혼돈이 동시에 있었고, 그것은 자식들에게 갈라져 물렸을 뿐이다.

‘잃어버림’이란 단어는 결핍 같지만, 그 속엔 역설적 여유가 있다. 시계를 잃으니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지갑을 잃으니 소비도 줄었다. 바쁨보다 비움이 더 어울리는 나이, 물건보다 웃음을 챙기는 것이 더 소중해진 시절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손에 들었던 것이 사라지면,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또 한 조각 떠났구나.”

혹시 내일은 또 무엇을 잃을까. 염려 대신 소망을 품는다. 차라리 걱정이 사라지면 좋겠다. 근심이 떨어져 나가고, 후회가 자취를 감춘다면, 그날 하루는 얼마나 가벼울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잃으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잊어버림마저 웃음으로 감싸는 마음’ 일 것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잃어버림은 나의 시(詩) 요, 건망은 나의 문체다.” 아들과 나, 비슷한 유전자로 살아가는 이 두 존재는 오늘도 어딘가에 둔 열쇠와 지갑을 찾으며, 삶의 또 다른 은유를 주워 담는다. 이 또한 잃음으로써 얻는 기이한 축복 아닐까.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그것―마음과 정신―이 신체에 붙어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것마저 어디론가 떠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사한 마음으로, 잃어버리지 않은 지금의 나를 조용히 쓰다듬어본다.


불현듯 시가 쓰고 싶다.

위로가 되려나



분실주의보


신분증은 신분을 잃고
지갑은 자존심을 접었다
시계는 내 손목의 족쇄였다는 듯
시간도 함께 달아났다

우산은 비 오기 전 사라지고
열쇠는 문 앞에서 웃는다
안경은 책 속에 갇혀 있고
핸드폰은 냉장고에서 냉각 중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혹시 내 이름도 어디다 두었을까
지금 이 말을 하는 이가
정말 나인가, 의심스러운 날도 있다

막내는 나를 꼭 빼닮아
기억보다 물건을 먼저 잃는다
그게 내 피의 농도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구별 못한 채

첫째는 반대로
질서의 신처럼 산다
하늘은 왜
이토록 공평치 않은 유전자를 배포했는가

나는 스스로에게 상장 하나 수여한다
‘잃어버림 분야 평생공로상’
대상은 이미 잃었으므로
상패만 증정한다

삶은 원래 다 잃고 사는 것
머리숱도, 허리둘레도, 첫사랑도
잊어야 비로소
뭔가가 되듯이

나는 오늘도 잃어버린 덕분에
조금은 가벼워진다
잃는 데 이력이 붙은 이 노년의 품격은
혹시 '비움의 미학'이 아닐는지

그러니 부탁하나 하련다
이 다음엔
걱정이 먼저
길을 잃어주기를.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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