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정해란 시인 시집에 실린 시
■
시평(詩評)
시의 날개일까 지느러미일까
ㅡ청람 김왕식 평론가 시평 감상 시
시인 정해란
시인의 의도와 감정을 때로 시인보다 잘 읽어
새로운 통로와 방향을 이끌어 주는 시평
그 시만의 온도와 질량을 예측해 주고
시 속 향기가 퍼지는 길을 열어주는 시평
시의 촉촉한 안쪽을 뒤집어 주기도 하고
시와 연결된 대자연이나 관계의 끈 찾아
가닥마다 색깔과 속성을 진단하는 징검다리
시의 뼈대와 시인의 마음자리를 통찰하는 시평
우물 속 갇힌 시를
날개 달아 하늘로 비상하게도 하고
지느러미 달아 더 넓은 물속으로
마음껏 유영하게도 하는 시평
시평, 시의 날개일까 지느러미일까
■ 시평, 시의 날개 혹은 지느러미
― 정해란 시인의 '시의 날개일까 지느러미일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해란 시인의 시 '시의 날개일까 지느러미일까'는 시를 해석하는 행위, 즉 시평(詩評)에 대한 깊은 존경과 통찰을 담아낸 탁월한 메타포 시다. 이 작품은 시를 둘러싼 사유의 지층을 여러 겹으로 파헤치며, 그 내면에서 시평이라는 존재의 의의와 기능을 부드럽고도 명징하게 그려낸다. 시는 본래 해석을 전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 해석은 시의 또 다른 飛翔이며 遊泳일 수 있음을 이 시는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시의 첫 연은 시평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 간명하고도 따뜻한 언어로 접근한다. “시인의 의도와 감정을 때로 시인보다 잘 읽어”내는 이라는 표현은 시평가가 단지 외곽을 해석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인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의 결까지 들여다보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시의 온도와 질량을 예측하고, 시 속 향기가 퍼지는 길을 ‘열어주는’ 존재로서 시평은 시 그 자체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능동적 작용을 한다. 이는 단순한 분석이나 평가가 아닌 ‘시적 동반자’로서의 기능이다.
이어지는 연에서는 시평의 역할이 더욱 입체적으로 조명된다. 시의 ‘촉촉한 안쪽’을 ‘뒤집는다’는 표현은 마치 내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듯,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으로 시의 내면을 파헤치는 비유로 읽힌다. 시를 통해 드러나는 자연과 관계, 존재의 층위를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시평은 단순히 해설의 도구가 아니라, 시와 세계를 잇는 ‘징검다리’가 된다. 시의 뼈대를 짚고 시인의 마음자리를 통찰하는 시평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 직관과 따뜻한 마음이 결합된 창조적 해석임을 보여준다.
세 번째 연은 이 시의 압권이다. “우물 속 갇힌 시를 / 날개 달아 하늘로 비상하게도 하고 / 지느러미 달아 더 넓은 물속으로 / 마음껏 유영하게도 하는 시평”이라는 메타포는 시평이 단지 텍스트를 따라가는 보조물이 아닌, 시의 생명력을 확장시키는 창조적 매개체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비상과 유영이라는 상반된 방향성이 공존하는 이 비유는 시평이 지닌 다차원적 가능성과 유연한 감식안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마지막 행 “시평, 시의 날개일까 지느러미일까”는 시 전체의 질문이자 결론이다.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며 어느 한쪽을 쉽게 선택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이 시가 가진 문학적 묘미이자 철학적 여운이다. 시평은 날개이기도 하며 지느러미이기도 하다. 때로는 하늘을 날고, 때로는 물속을 유영하며, 시를 보다 먼 곳으로, 보다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조용한 동력이다.
정해란 시인은 이처럼 ‘시평’이라는 주제를 통해 문학의 해석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다. 동시에 이 시는 시평을 행하는 존재들에 대한 따뜻한 경의이자, 시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은 헌정시이기도 하다. 시는 평소 시를 읽는 독자들이 느끼지 못했던 시평의 내면성과 따뜻한 본질을 감각적으로 들춰내며, 시평이야말로 또 하나의 창작 행위임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정해란 시인의 인간적인 품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녀는 오랜 세월 교단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순한 심성과 밝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 온 참된 스승이었다. 그 보듬는 마음은 글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가 말하는 시와 시평은 생명을 사랑하는 눈길과도 맞닿아 있다. 참 좋은 사람에게서 참 좋은 시가 나온다는 말은, 이 시를 통해 다시금 입증된다. 이 시는 단지 문학에 대한 고찰을 넘어, 사람에 대한 신뢰와 따뜻한 격려가 함께 묻어나는 시의 헌사이다. 마치 정해란 시인의 삶이 그러했듯이.
따라서 이 작품은 시평가들에게는 자각의 거울이자, 시인들에게는 해석과 공존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맑은 물 한 그릇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한 편의 투명한 창이다.
이 시가 스스로 물었듯, 시평은 날개인가, 지느러미인가.
답은 명확하다.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속에서, 시평은 언제나 날개이고 지느러미이며, 동시에 따뜻한 한 줌의 바람이다.
□
시평, 시의 날개와 지느러미 사이
― 정해란 시인을 위하여
청람 김왕식
한 편의 시가
스스로 걸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말은 있었으나 숨이 막히고
숨은 있었으나 길을 몰라
우물 속 고요에 갇혀 있을 때
그때, 당신은 다가와
시의 등허리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혹은 말없이 지느러미를 붙여
깊은 물속으로 이끌어 주었다
당신은 묻지 않았다
이 시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대신 조용히 귀를 기울였고
시보다 먼저, 시인을 이해했다
말보다 마음을, 구조보다 숨결을
당신은 시의 온도를 짚어냈고
단어 사이에 고인 고요까지
손끝으로 가늠할 줄 알았다
때로는 바람이었다
비상의 타이밍을 알려주는
때로는 물살이었다
의식 아래를 미끄러지듯 건너게 하는
시인은 몰랐던 그 시의 색깔과 냄새
그 질량과 울음을
당신은 알고 있었다
시가 아직 스스로 눈을 뜨지 못했을 때도
그래서 당신이 쓴 시평은
해설이 아니라
또 다른 시였다
한 편의 시에 깃든 다른 영혼의 기록
그대여, 당신의 문장은
시의 맥박을 재는 청진기였고
시인의 그늘을 밝혀주는 창이었으며
길 잃은 시를 제 자리로 이끄는 등불이었다
이제 시인들은 안다
당신의 시선 아래 놓인 시 한 편은
더 멀리 날고
더 깊이 헤엄쳐
세상이라는 독자의 가슴에 닿을 수 있음을
시평,
날개일까 지느러미일까
그 둘 모두라 해도 모자람 없으리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당신이었다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따뜻한 눈이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