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청송
시인 이상엽
남도길
원주 거쳐
충주, 단양 지나
안동, 청송에 들어서니
지난 화마로 검은 산이 이어지고
중간에 파란 생명이 다시 돋아나는데 자연의 회복력은
대단하다 느껴지고
청송 얼음골 시원한 바람
뼛속까지 시원한데
여러 사람들 시원한
얼음골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누구는 화투치고
몇몇은 자리 깔고 낮잠에 빠지고
인공폭포 있는 곳이
겨울에는 빙벽 오르기 대회장이라
길거리 거리마다
사과밭이 줄지어지고
애기 주먹만 한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세 달 후는 빨갛게 익어갈 것이네
소노벨 솔샘온천에
몸 담그고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네
■
자연의 숨결을 따라 걷는 시적 사유
― 이상엽 시인의 '청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상엽 시인의 '청송'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시간과 회복의 리듬을 따라가는 시적 순례문이다.
남도의 길에서 시작해 충주, 단양, 안동을 지나 청송에 이르는 노정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을 넘어 삶의 궤적을 성찰하는 내면의 항로이자, 우리 땅이 품은 생명력과 회복력에 대한 감동의 기록이다.
시인은 "지난 화마로 검은 산이 이어지고 / 중간에 파란 생명이 다시 돋아나는" 장면을 통해, 파괴와 회복이 교차하는 자연의 순환을 포착한다.
이 구절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삶 또한 그런 순환 위에 놓여 있다는 깊은 통찰을 품는다. 상처 입은 산이 다시 푸르름을 회복하듯, 인간 또한 고통과 회한을 딛고 새 생을 움틔울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을 통한 시인의 인문적 성찰이며, 삶을 꿰뚫는 그의 철학이기도 하다.
얼음골의 시원한 바람은 단지 기온을 낮추는 바람이 아니다. 그것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피로와 속세의 번잡함을 몰아내는 정화의 바람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 화투를 치는 무리, 낮잠에 빠진 사람들 ― 속에서 인간의 일상성과 자연의 비일상성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포착한다.
이는 자연 속 인간의 모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자, 분주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쉼과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미의식의 발현이다.
"애기 주먹만 한 사과들이 /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밭 풍경은, 청송이 지닌 풍요와 기다림의 철학을 암시한다. 사과는 곧 다가올 수확의 계절을 예고하는 희망의 상징이며, 지금은 작지만 장차 붉게 익을 생명의 가능성이다.
이는 곧 삶에 대한 믿음, 기다림에 대한 신뢰, 자연과 호흡하는 느긋한 시간의 미학이다. 시인은 그것을 주저 없이 포착해 낸다.
마지막 연, "소노벨솔샘온천에 / 몸 담그고 / 하루의 피로가 / 말끔히 사라지네"는 이 시의 정서적 여운을 결로 맺는 대목이다. 육신의 피로뿐 아니라, 마음의 피로까지 씻어내는 이 장면은 여행의 종착이자, 삶의 여백을 품는 휴식의 서사이다.
이는 단순한 온천 체험을 넘어, 존재 전체를 감싸는 위로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상엽 시인의 시 세계는 언뜻 소박하고 담담해 보이나, 그 속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상처에 대한 회복의 시선, 그리고 삶의 본질을 꿰뚫는 시인의 내공이 녹아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연을 의인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순결한 시적 태도를 지닌다. 과장되지 않되, 진실한 언어로 직조된 그의 시는 독자에게 삶의 온기를 전하며, 자연 속에 스며든 인간의 자리를 묵묵히 조명한다.
이러한 시인의 철학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집약된다. 그의 시는 다르지 않은 일상에서 특별한 의미를 건져 올리고, 그 모든 장면을 문학적 사색으로 승화시킨다. '청송'은 단지 한 편의 여행 시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의 결이 담긴 한 폭의 수묵 산수화이며, 시대를 넘어 공명하는 시적 유산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