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안최호 시인의 '폭염일기 ― 청람루의 하루'

김왕식








폭염일기 ― 청람루의 하루





자연인 안최호





태양이
볶음밥 뒤집듯
대지를 지글지글 뒤집는다

장심리 청람루 정원 꽃들도
고개를 떨군다
꽃잎이 아니라
타들어간 부챗살 같아서

개망초, 도라지, 상사화도
이쯤 되면 제 명찰 떼고
그냥 '그늘 바라는 풀'

그 사이
마구 뛰던 우리 강아지 청람
그늘 아래 엎드려
혀를 널빤지처럼 내민 채
"살맛이 안 나개" 한숨을 쉰다

입으로 숨 쉬는 것만이
지금 청람이의 철학

병아리들
갓 태어난 생이란
원래 뜨거운가 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모이보다 그늘을 찾고
쫑쫑 걷다 말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삐약 대신 쉿—을 외친다

바람조차
슬리퍼 끌며 지나가는 오후
나는 오늘도 이 풍경의
그림자 하나 되어 앉아
삶이 덥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이 또한 여름이 하는 일
꽃도, 강아지 청람이도, 병아리도
낮잠 자고 나면
다시 깨어나
무언가 귀여운 짓 하나쯤
또 벌일 테니까

그러니 나는 부채 하나 들고
지금 이 순간을
조용히 부치며 바라본다
이 더위 속에도
아름다운 것들은
숨은 그늘에서 피어나고 있다

ㅡ 자연인 안최호






그늘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시학
― 자연인 안최호 시인의 '폭염일기 ― 청람루의 하루'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자연인 안최호 시인의 '폭염일기 ― 청람루의 하루'는 단지 여름 풍경을 묘사하는 계절시가 아니다. 이 작품은 폭염이라는 생존의 현실을 유쾌한 시선으로 통과하며, 자연과 인간, 동물과 식물 모두가 조화롭게 숨 쉬는 ‘청람루 생태적 일상’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 보인다. 그 속엔 절제된 해학과 시적 통찰, 그리고 ‘함께 더위를 견디는 존재들’에 대한 다정한 연대의 시선이 녹아 있다.

시의 첫 행, “태양이 / 볶음밥 뒤집듯 / 대지를 지글지글 뒤집는다”는 재치 넘치는 비유로 독자의 미소를 유도한다. 시인은 날카로운 폭염을 단호한 묘사가 아닌 ‘볶음밥’이라는 일상적 소재에 투영시켜, 고통마저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언어의 지혜를 발휘한다. 이로써 시인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되, 그것을 삶의 일부로 관조하는 철학적 태도를 드러낸다.

“꽃잎이 아니라 / 타들어간 부챗살 같아서”라는 묘사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 뜨거운 현실에 조용히 저항하는 꽃들의 침묵을 은유한다. 개망초, 도라지, 상사화도 ‘제 명찰을 떼고’ 그저 '그늘 바라는 풀'이 되어버리는 장면은, 생명 앞에서 지위나 이름 따위는 아무 의미 없음을 역설한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존재의 본질에 주목하는 ‘비탈권적 시선’을 보여준다. 이름보다 숨이 중요하고, 명예보다 그늘 한 자락이 더 절실한 삶의 진실을 잔잔히 일러준다.

청람루의 강아지 ‘청람’은 시인의 또 다른 자아처럼 등장한다. “혀를 널빤지처럼 내민 채 / ‘살맛이 안 나개’”라는 표현은 단순한 의인화를 넘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고통 감각을 연결시키는 매개로 작동한다. ‘입으로 숨 쉬는 것만이 철학’이라는 대목은, 폭염 앞에서 모든 생명이 공통으로 가지는 최소한의 생존 윤리를 드러낸다. 이는 시인이 동물과 자연을 동등한 생명의 주체로 존중하는 깊은 생태적 감수성을 반영한다.

병아리들의 모습은 더위를 대하는 유년 생명의 혼란스러움을 상징하며, “삐약 대신 쉿—을 외친다”는 표현은 시인의 섬세한 청각적 이미지 연출이다. 이때의 ‘쉿’은 생명들이 여름 앞에서 스스로를 숨기는 침묵의 언어이자, 독자에게 건네는 침묵의 연대다.

바람조차 “슬리퍼 끌며 지나가는 오후”라는 구절은 이 시의 리듬을 가장 여유롭게 풀어낸 장면이다. 이 느린 시간 속에서 시인은 “그림자 하나 되어 앉아 / 삶이 덥다는 것을 배운다”라고 고백한다. 이는 고통을 ‘깨달음’의 통로로 전환하는 시인의 태도이며, 더위조차 살아 있음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깊은 생철학적 통찰이다.

무엇보다 이 시의 미학은 마지막 연에 농축되어 있다. “이 또한 여름이 하는 일”이라는 문장은 계절의 섭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무욕의 철학이며, “이 더위 속에도 / 아름다운 것들은 / 숨은 그늘에서 피어나고 있다”는 마무리는,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위안과 희망의 정서로 독자의 마음을 다정히 감싸 안는다.

자연인 안최호 시인의 삶의 철학은 명징하다. 그는 삶의 바깥에서 문학을 구경하지 않는다. 외려 시는 그의 일상이고, 그 일상이 곧 시이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때론 꽃의 침묵과도 교감하고, 병아리의 떨림에도 응답하는 그의 시는, 소박하지만 거짓이 없으며, 웃음을 품되 가볍지 않고, 철학을 담되 무겁지 않다.

'폭염일기 ― 청람루의 하루'는 그늘을 찾는 생명들의 작은 몸짓 속에서 인간 존재의 진실을 발견해 내는 시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한 여름의 기록이 아니라, ‘함께 덥고, 함께 쉬고, 함께 견디는’ 세상의 온도를 낮추는 문학적 그늘이며, 청람루라는 공간에 피어난 삶의 시학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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