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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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아침 사이
시인 청민 박철언
가물거리는 색깔의 기억이
다시 꿈틀거리며 눈뜨는 새벽
남은 어둠을 쪼아버리려
분주하게 시작되는 맑은
새소리
희미하던 동선이 하나둘 선명해지니
번지는 커피 향 따라 접혔던 생각이 일어서고
입 다물었던 주변 소리도 하나씩 깨어난다
멈췄던 바퀴마다 속도가 깨어나니
햇살도 푸르스름한 공기 가르며
거리마다 건물마다 생기를 뿌린다
소리와 색깔과 향, 속도와 햇살이
도시의 혈관과 맥박 되어
깨어나는 것들로 다시 숨 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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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서 아침으로, 정치에서 시로
―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세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새벽과 아침 사이'는 어둠과 빛, 정지와 운동, 침묵과 소리 사이의 경계에서 세상의 본질적 숨결을 포착해 낸 시적 명상이다. 마치 심연에서 부상하는 고요한 파문처럼, 이 시는 도시의 생명력이 서서히 살아나는 순간을 세심하게 붙잡으며, 인간과 시간, 세계의 내밀한 리듬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시인은 “가물거리는 색깔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다시 꿈틀거리며 현재로 불려 오는 생명이다. 그 기억은 ‘눈뜨는 새벽’이라는 상징적 순간에 소생하며, 이는 곧 ‘새로운 하루’로 진입하기 직전의 존재적 각성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맑은 새소리’는 남은 어둠을 걷어내는 생명의 신호로 등장하며, 시 전체를 경쾌한 생명률로 이끌어간다. 이때 박 시인의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시간 흐름과 외부 세계의 각성을 정교하게 병치함으로써, 독자에게 한 편의 철학적 서정을 선물한다.
‘번지는 커피 향’과 ‘접혔던 생각이 일어서고’라는 표현은 일상의 회복이 단순한 습관이 아닌, 하나의 존재적 열림임을 말해준다. 감각과 감정, 기억과 사유가 동시다발적으로 깨어나는 이 장면은 곧 ‘소리와 색깔과 향, 속도와 햇살’이라는 시적 오중주로 확장된다. 이는 도시의 맥박이며, 인간 삶의 맥락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다. 이처럼 박철언 시인은 도시적 삶을 서정시의 언어로 번역해 내며, 일상과 생명의 교차로를 정제된 감각으로 풀어낸다.
정치가에서 서정시인으로의 변신은 단순한 역할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중심에서 시의 중심으로, 외향적 영향력에서 내향적 울림으로의 귀환이다. 박 시인의 시는 격정이나 과시가 없다. 외려 정제된 언어와 침묵의 결을 통해, 삶의 본질을 정중하게 마주한다. 그는 권력의 목소리를 버리고, 대신 고요한 아침의 새소리와 커피 향, 깨어나는 거리의 생기를 택했다. 그 선택은 수많은 독자와 문우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진정한 ‘변화’란 무엇인가를 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청민 박철언 시인은 시 속에서 빛을 좇되, 눈부시지 않게, 어둠을 그리되 절망으로 가라앉지 않게 한다.
'새벽과 아침 사이'는 그의 삶의 가치철학처럼, 경계에서 피어난 언어의 꽃이다. 그 꽃은 말없이 피어나지만, 보는 이의 마음속에 오랜 향기를 남긴다. 그것이 곧 시인의 깊이이며, 박철언 시인이 우리 시대에 전하는 조용한 진심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