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버스 차장의 풍경과 그 너머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몸으로 껴안던 시절의 기억

― 70년대 버스 차장의 풍경과 그 너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1970년대, 서울의 아침은 늘 비좁았다. 사람들의 마음도, 버스 안의 공간도. 그 무렵 종로 2가에서 효자동 경복고등학교까지 향하던 59번 버스는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출발 몇 정거장 만에 이미 문턱까지 넘친 승객들. 하지만 버스는 멈췄고, 기다리던 학생들은 웃으며 또 올라탔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그 중심엔 언제나 ‘차장’이 있었다.


차장은 단순히 요금만 받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문틈에 기대어 서서 사람의 흐름을 조율하는 안무가였고, 몸으로 자리를 만드는 조각가였다. 두 손으로 창틀을 꼭 잡은 채, 몸을 반쯤 바깥으로 내민 그는 발끝 하나를 간신히 디디고 균형을 잡은 채 버스를 몰아갔다. 그 좁은 발판 위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공간으로 내어주었다.


“내 허리 잡고 올라타!”


이 한마디는 그 시절 등교 버스의 통행 허가서이자, 웃음이 섞인 환대의 인사였다.


교복 입은 우리는 그 말에 기대어, 맨손으로 차장의 허리를 짚고, 어깨와 팔로 서로를 붙들며 한 명, 두 명씩 더 안으로 스며들었다. 가방은 등에 멜 수도 없어 배 앞에 끌어안았고, 바닥에 발을 디딜 새도 없이 온몸이 서로의 몸에 매달린 채 등굣길을 갔다.


땀이 찬 교복 속은 따뜻했다. 서로의 숨결이, 등과 팔과 머리칼을 스치며 버스 안을 데웠다. 누군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으면 옆의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받아주었다. 책이 삐져나온 학생의 손에 “너 바쁘니까 내가 잡아줄게” 하며 노트를 대신 들던 친구도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조용히 마음을 담은 메모 한 장을 여학생의 가방 틈에 넣었다. 이름도 모르던 그 아이는, 수업 중 그 메모를 발견했고, 몇 주 후부터 둘은 펜팔이 되었다. 버스는 그 시절 사랑의 우체통이기도 했던 것이다.


차장은 문에 기댄 채, 브레이크가 걸릴 때면 먼저 발을 뻗고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그는 사람보다 먼저 기울었고, 사람보다 늦게 쉬었다. 급커브에 몸이 휘청일 때면, 그는 창틀을 껴안듯 안고 버스를 붙들었다. 그의 손은 회수권을 받기도 했지만, 더 자주 사람을 붙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좁은 59번 버스는 하나의 마을이었다. 무언의 규칙과 배려로 작동하는 공동체. 눈빛만으로도 자리를 비켜주고, 웃음만으로도 불편함을 덮던 시절. 자동문도, 카드 결제도, 인공지능도 없었지만, 그 안엔 사람의 체온이 있었다.


오늘의 버스는 빠르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하다. 손잡이를 잡아주던 손도, 말없이 가방을 들어주던 배려도, 가방 속에 넣었던 펜팔의 설렘도 없다. 요금은 정확히 찍히지만, 마음은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때, 차장의 허리를 붙들고 올라탔지만, 사실은 그 시절의 온기를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그날의 풍경을 떠올려본다. 땀에 젖은 교복, 구겨진 노트, 손에 묻은 잉크 자국, 서로 기대며 깔깔대던 웃음,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허리를 내어주던 차장의 깊은 숨결.


그것은 단지 오래된 교통수단의 추억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던 한 시대의 품이었다.


나는 그 품이, 지금 이 사회에도 다시 필요하다고 느낀다. 너무 많은 이들이 여전히 문 밖에 서 있다. 버스가 출발할까 봐, 세상이 자신을 놓고 갈까 봐 조급해한다. 그때처럼 누군가 “내 허리 잡고 올라타!” 한마디 해준다면, 그조차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몸짓 하나, 가방을 대신 들어주던 그 손 하나,

지금 우리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날의 59번 버스를 기억하며,

다시 한 번, 사람으로 사는 일의 품격을 되새긴다.


― 청람 김왕식



□ 경복고등학교 졸업 사진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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