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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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뿌리와 천국의 시작
― 미움과 질투,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세상의 모든 뿌리는 흙 속에서 자란다.
마음의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토양에 내려앉는다. 그중에서도 미움과 질투는 어둠의 흙에 돋아나는 검은 뿌리다. 그 뿌리는 깊고도 끈질기다. 다른 이의 기쁨을 곧 나의 결핍으로 느끼는 순간, 씨앗은 내면의 습지에 떨어지고, 질투라는 포자가 번지듯 퍼지며 뿌리내린다. 미움은 그렇게 자란다. 질투가 눈이 되고, 시기가 손이 되어, 언어는 가시로 바뀌고, 침묵마저도 냉기 어린 돌멩이처럼 무겁다.
이 뿌리는 자라면서 나무가 되지 않는다. 대신 속을 썩인다. 타인을 향해 자라난 화살촉은 결국 자신을 겨눈 칼끝이 된다. 그 칼은 외부가 아니라 마음 안을 베며, 고요한 시간을 조각낸다. 질투와 미움은 정원의 꽃을 말라죽게 하고, 새들의 노래를 침묵으로 바꾼다.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불이 타오르는 곳이 아니라,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무정의 공간, 사람이 있어도 사람이 닿지 않는 거리. 결국 지옥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피워낸 어둠의 정원이다.
그 반대편,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뿌리가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빛의 흙에 뿌리를 내린다. 질투가 결핍에서 태어난다면, 사랑은 충만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바람을 의심하지 않는다. 빛이 누구에게 더 오래 머무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사랑은 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송이 민들레처럼, 고통을 껴안고도 햇살을 향해 웃는다.
사랑은 천국의 시작이다. 그것은 커다란 성문이나 황금의 길로 시작되지 않는다. 외려 아주 작은 틈으로 스며든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귀, 낯선 이에게도 건네는 미소, 오래된 오해를 먼저 푸는 용기. 천국은 그 미세한 틈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새벽의 첫 이슬처럼 조용히 내리지만, 닿는 곳마다 생기를 틔운다. 사랑은 한 인간의 내면에 샘처럼 솟아, 또 다른 이의 고단한 하루를 적신다.
사랑은 비교를 멈추게 하고, 미움의 감옥에서 해방시킨다. 사랑은 질투를 무너뜨리는 유일한 열쇠이다. 사랑은 나무의 가지처럼 뻗어 나가며, 타인의 존재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결국, 천국이란 사랑이 나무처럼 자란 풍경이다.
그 풍경은 우리 안에도 자랄 수 있다.
지옥은 타인을 향한 가시로, 천국은 타인을 향한 잎새로 피어난다. 질투는 잎보다 뿌리가 먼저 썩게 하고, 사랑은 뿌리보다 향기가 먼저 퍼지게 한다. 오늘 우리가 품는 감정 하나가, 지옥의 뿌리가 될 수도 있고 천국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묻는다.
지금 나의 마음에 내리는 감정은 어떤 씨앗인가. 가시덩굴인가, 꽃의 시작인가. 하늘을 닮고 싶은가, 아니면 그림자를 늘리고 싶은가. 세상은 여전히 선택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그 문의 열쇠는 언제나 사랑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