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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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하고, 축복 속에 살기 위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세상이 모두 아름답고, 행복하고, 축복 속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마치 한낮의 태양 아래 꽃이 피기를 바라는 소망과 같다.
태양만으로는 꽃이 자라지 않는다. 바람도, 비도, 심지어 밤조차도 꽃을 키운다. 그렇듯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 축복은 단 하나의 조건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마음을 내미는 방식,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조용히 자라난다.
먼저, 아름다움은 보는 눈에서 비롯된다. 장미를 향해 가시를 먼저 보는 눈은 상처를 떠올리겠지만, 꽃잎을 바라보는 눈은 향기를 기억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세상이 본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먼저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는 감각의 정결함 속에 있다.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면, 먼저 자신의 눈동자에 묻은 먼지를 씻어야 한다. 이기심의 티끌, 편견의 얼룩, 무관심의 그림자를 닦아낸다면, 세상은 스스로 빛날 준비가 되어 있다.
행복은 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지만, 늘 머리 위에 떠 있는 법이다. 다만 그 구름을 따라 걷지 않고, 하늘을 원망할 뿐이다. 행복은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작고 조용한 깨달음에서 피어난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주고받을 때, 찻잔에 김이 오를 때,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뜰 때, 우리는 이미 축복 속에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속도가 마음의 촉감을 무디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삶을 조금 늦추고, 숨을 한 박자 쉬어가는 자만이, 흐르는 행복의 물결에 손끝을 담글 수 있다.
축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밀알 하나가 썩어야 밀이 되고, 그 밀이 갈려야 빵이 되듯, 진정한 축복은 자신이 작아질 때 자라난다.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그늘 하나를 덜어주는 손길, 이름 모를 이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길, 그것이 곧 하늘이 내리는 축복의 징표다. 내가 축복이 될 때, 세상도 축복이 된다.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하고, 축복 속에 살기 위한 길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말의 끝자락에서 시작된다. 부드러운 말 한 줄이 지친 마음을 감싸고, 미소 하나가 삶의 파문을 바꾸며, 손 한 번 잡아주는 용기가 인생을 새로 적신다. 그리하여 결국 세상은, 먼저 건넨 마음의 모양대로 되돌아온다.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늘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의 그늘을 먼저 살펴야 한다. 고운 말을 품고, 남의 슬픔을 기꺼이 들여다보며, 나의 하루를 작은 불빛처럼 밝히면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은 말없이 웃고 있을 것이다. 마치 한겨울의 나목이 어느 날 꽃을 피우듯, 그렇게 세상은 우리에게 대답할 것이다.
결국, 세상이 아름답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아름다워야 한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따뜻해야 한다. 축복이 넘치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누군가의 축복이 되어야 한다. 이 간단하지만 위대한 진리가, 우리가 다시 피워야 할 삶의 첫 문장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