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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부시지 않아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이것이 삶이다

ㅡ 눈 부시지 않아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청람 김왕식





하루는 대단한 사건 없이도 삶을 말해준다. 무대가 커야만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의 하루가 무사히 흐른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찬란한 축복이다. 누군가는 보잘것없다 여길지 모르나, 작고 고요한 순간들 속에 삶의 진실이 숨어 있다.

오늘 아침, 눈을 떴다는 것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다. 어둠 속에서 잠든 의식이 빛으로 깨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삶이 나를 아직 품고 있다는 증표다. 내일을 약속받지 못한 수많은 잠자리 위에, 나는 살아 있다는 자각을 조용히 얹는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먹는 일은 생존을 넘어선 축복이다. 쌀이 익어가는 동안 부엌에 깃든 김의 향기, 그 속에 깃든 누군가의 손길과 마음이 함께 퍼진다. 식탁 위의 반찬 한 접시에도 계절과 노동, 사랑과 기억이 고루 배어 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목소리로 불러낼 수 있다는 것. 세상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님을, 나는 그 부름 속에서 실감한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지붕 아래 쌓인 시간, 낡은 마루와 문지방의 감촉, 문을 여닫는 소리까지도 익숙하다. 그 익숙함이 나를 안심시키고, 다시 하루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두 다리로 걷고, 팔을 움직이고, 목을 돌릴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몸이란 기적의 장치다. 제 뜻대로 움직여주는 몸이 있다는 것은, 하루를 살아내는 데 있어 가장 든든한 동반자다.

물 한 잔을 편히 마실 수 있다는 것도 경이로운 일이다. 갈증을 해소하고,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그 청량함 속에서 삶은 다시 맑아진다. 깨끗한 물 한 잔이 사치가 되는 이들에게는, 이 소박한 행위조차 꿈같은 희망이리라.

누군가의 안부가 문득 떠오른다는 것은 마음이 아직 따뜻하다는 증거다. 그리움은 곧 살아 있다는 신호다. 사랑과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귀한 감각이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은 외로움의 가장 든든한 해답이다.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한 사람, 울지 않아도 울음을 읽어주는 눈동자 하나, 그 존재만으로도 이 세상은 충분히 견딜만하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삶이 나에게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며, 나 역시 누군가의 일상이 되어주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이 생계든, 돌봄이든, 작은 약속이든 간에, ‘해야 함’이 있다는 건 ‘살아 있음’의 징표다.

하루를 감사히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오늘 하루, 나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다 해도, 그 상처 위에 연고처럼 덮이는 온기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닫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삶의 중심을 지켜낸 사람이다.

이처럼 우리는 언제나 거대한 기적 속에 살고 있다. 삶이 건넨 이 작은 증거들이 모여, 조용한 시 한 편을 쓴다. 눈부시지 않아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하루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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