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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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한 짝"
브런치스토리 온현 작가
사랑을 돌보다
한 다리를 잃었다
그 사랑 놓아줄
마지막 외출
남은 발에
양말 신을 때
위로하듯 반짝이던
너의 목소리
"난 양말을
남보다 두 배로 오래
신을 수 있어요'
처음엔 다리를
건강한 호흡을
마침내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고
천국을 품에 안은
고운 네가
양말 한 짝에
웃고 웃었다
그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 날아올랐다
ㅡ
소아당뇨를 앓으면서도 장애가 더 심한 가족을
돌보다가 합병증으로 다리 한쪽을 절단한 상황에서
처음 만났던 현주 씨(가명)
나중에 만성신부전증이 더해져 합병증으로
사망하기까지 그녀를 수년간 만났다. 처음에 상담실
도중에 지방으로 이사 간 후 전화상담으로, 마지막
호스피스 상담은 가정방문으로 이루어졌던 오랜
환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신장기능도 거의 망가졌던 그녀
마침 점심시간 끝무렵, 차 한 잔을 마시던 중이라
그녀에게도 녹차 한 잔을 권했었다. 마시지 못할
차였지만 내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네 살 위의
그녀는 편히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사 긍정적이고 침착했던
성품의 현주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골로 이사가게
되었다. 근처에 적절한 기관이 없어 전화로
사후지도(follow- up)를 하기로 했다.
끝이 예견된 상담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죽음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던 건강상태였다.
이사 후 일 년쯤 지나서였을까, 그날도 그녀가
전화를 해왔다
선생님, 마지막 인사 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저 곧
천국에 갈 것 같아요. 제가 먼저가 있을 테니
선생님은 천천히 오세요.
그녀는 남편의 직장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 통화를 마치고 그녀의 마지막 외출을 계획했다.
도울 사람을 찾아보아도 갑자기 지방까지 갈 수 있는
자원봉사자가 없었다. 사정을 들은 내 남편이 함께
가겠다 해서 휴가를 내고 그녀의 집에 내려갔다.
그녀는 일찍 시작된 소아당뇨로 충분한 공부도
내로라할 직장생활도 해 보지 못했다. 결혼 후
척수손상으로 휠체어를 타는 남편을 돕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채워갔던 그녀였다. 지방 소도시의
집에서, 사흘째 곡기를 끊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가 우리를 반기며 열게 웃었다
그녀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의족도 뗐으니, 한 발에만
양말을 신기면 되었다. 조심스레 양말을 신기는
일일자원봉사자에게 그녀가 또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양말 한 켤레 사면 남들보다도 배로 신을 수
있는 경제적인 사람이에요."
정말 그렇다며 맞장구치는 나의 남편과, 나보다 훨씬
의연한 그녀는 죽이 잘 맞는 친구들 같았다
붓고 복수가 차서 온몸이 둥글둥글해진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차에 태웠다. 시내에 있는 그 남편의
직장은 차 없이 가기 힘든 거리였다. 그녀는 남편의
사무실 이곳저곳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었지만 내내 환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나눈 짧은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자신이 천국에 간 후 남편을 도울
자원봉사자가 구해졌고, 우리가 만나러 와 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던 그녀의 얼굴이 노을색으로
빛났다.
그녀는 그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인사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도와준 남편이 새삼 고마웠다.
호스피스 케어를 담당한 상담 자원봉사자들이나
팀원들은 환자를 보내드리고 나서 애도의 기간이
필요할 만큼 소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만큼은 아니지만 사별과 애도의 감정을 깊이
느끼기 때문이다. 마지막 임종준비상담은 나름의
서사가 쌓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므로 그만큼
서로에게 힘들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현주 씨와의 이별은 내게도 준비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녀는 마지막 만남에서조차 슬픔을 덮고도 남을
아름다운 미소와 농담을 선물하고 간 특별한
사람이었다.
죽음 앞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완성을 향해 간
그녀. 질병도 장애도, 심지어 죽음마저도 그녀에게는
벽이 되지 못했다. 그날의 노을과 양말 한 짝도
슬픔이 아닌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렇게 그녀는 한 편의 시가 되었다
ㅡ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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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한 짝”
ㅡ가장 빛나는 퇴장, 가장 다정한 이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브런치스토리 온현 작가의 '양말 한 짝'은 단순한 이야기의 기록을 넘어, 한 인간이 남긴 ‘존엄한 생의 문장’으로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 이 글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여준 ‘현주 씨’라는 여성의 숭고한 인간성과, 이를 조용히 동행한 상담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생의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문학적으로 증명해 낸다.
작품은 시처럼 시작된다. "사랑을 돌보다 한 다리를 잃었다"는 한 문장은, 그녀의 삶을 관통한 아픔과 헌신을 단숨에 압축한다. 그리고 “양말 한 짝”이라는 물리적 상징은, 결핍의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머와 따뜻함으로 전복된다. "난 양말을 남보다 두 배로 오래 신을 수 있어요"라는 말에는 고통의 무게를 웃음으로 견뎌낸 한 여성의 위트가 빛난다. 그 목소리에는 비통이 아닌 기품이, 한계가 아닌 평온이 있다.
글의 미학은 의도적으로 절제된 문장 속에 숨어 있다. 작가는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대신, 묵묵히 ‘기록자’의 위치에 머무르며 삶의 마지막을 함께한 한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킨다. 삶을 다 써 내려가는 이의 마지막 외출, 그것을 위한 양말 한 짝, 그 발에 신겨지던 작고 소박한 물건 하나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신장 기능이 거의 망가진 상태’, ‘곡기를 끊은 사흘째’, ‘남편의 직장을 마지막으로 방문’—이 모든 장면이 디테일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배치되어, 슬픔의 강도가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잊히지 않는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외려 자신보다 더 중한 남편을 끝까지 생각하며, 삶을 스스로 정돈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산문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환자’라 불리던 한 여성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해 “당신은 천천히 오세요”라고 웃으며 작별을 건네는 장면이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선량함의 결정체이며, 신앙을 넘어선 내면의 빛이다.
온현 작가는 그 빛을 ‘노을색 얼굴’이라 표현한다. 이 수사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사랑의 색깔이자, 작가가 기억하고자 하는 그녀의 ‘인격의 형상’이다. 그날의 노을과 ‘양말 한 짝’이 ‘슬픔이 아닌 그리움으로 남았다’는 마지막 문장은, 모든 독자의 마음을 조용히 젖게 만든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양말 한 짝에 웃고, 노을에 감사를 남긴 채, 조용히 한 편의 시가 되어 떠났다.
이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현주 씨’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묻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죽음을 준비하며 가장 아름답게 웃은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유산은 어떤 위대한 유산보다 더 크다. 그것은 “죽음조차 농담처럼 품을 수 있는 인간의 깊이”이며, “한 짝의 양말로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영혼의 고요한 빛”이었다.
이 글을 읽은 이들 모두가, 그녀처럼 사는 법을 배워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