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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참회록」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참회록




시인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의 「참회록」
ㅡ 부끄러움이라는 별을 닦는 일



문학평론가 김왕식




윤동주의 「참회록」은 단지 회한을 토로하는 고백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마침내 빛이 되어가려는 한 존재의 눈물겨운 여정이다. 윤동주는 자신의 전 생애를 향해 물음을 던지되, 그것을 비극으로 남기지 않고 '참회'라는 형식의 빛으로 정화해 낸다. 그리하여 이 시는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미학'을 완성한 위대한 내면의 서사시다.

첫 연의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은 윤동주 시 세계를 여는 상징적 문이다. '파란 녹'은 세월과 죄의 누적이며, '구리거울'은 맑고 정직한 반영을 품은 고대적 장치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이 '보아야 할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온 역사임을 뜻한다. 그는 스스로의 얼굴, 곧 삶을 마주하기를 주저한 한 청년으로서 그 거울 앞에 다시 선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여기서 시인은 ‘줄이자’는 말을 통해, 삶의 전체를 압축된 고백 하나로 치환한다. 그의 24년 일 개월은 결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조국이 빼앗기고, 말이 검열당하고, 청춘이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절이었다. 그 안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살았는가. 기쁨을 찾을 겨를도 없이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는 삶을 살아내는 것조차 죄책이 되던 윤동주의 고결한 내면을 드러낸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참회는 한 번의 사과로 끝나는 행위가 아니다. 그의 고백은 미래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윤리적 시선은 더 깊어지고, 부끄러움은 더 진해진다. 그에게 삶이란 끊임없이 반성해야 할 시간의 연속이며, 젊음을 부끄러워하는 그의 태도는 일반적인 회고와는 결을 달리한다.

특히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라는 대목은 역설적이다. 고백을 했던 자신조차 다시 부끄러워하는 이중의 부끄러움. 이중의 회심. 그는 죄를 고백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고백의 순도까지 스스로 다시 반성한다. 이처럼 윤동주는 끊임없이 자신을 거울에 비추고, 닦고, 다시 바라보는 ‘영혼의 윤리학자’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이 구절은 참회의 방식이자 그의 시 쓰기의 태도다. 손바닥은 행위의 상징이며, 발바닥은 땅을 딛는 존재의 무게다. 즉 그는 말과 행위, 존재 전체로 자신을 닦겠다는 결의에 다다른다. 그 닦음은 결국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으로 나타난다. 이 이미지야말로 시인의 영혼의 실루엣이다.

운석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의 잔해, 곧 ‘추락한 이상’이며, 그는 그 파편 아래 외롭게 걸어가는 존재로 자기를 위치시킨다. 윤동주에게 있어 시는 삶을 꾸미는 도구가 아니라, 한 인간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시는 그의 거울이고, 참회는 그의 펜촉이며, 그 끝엔 언제나 한 줄의 침묵이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회개'가 아니라 '참회'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지만, 참회는 계속 기억하고 새기는 일이다. 윤동주가 말한 부끄러움은 단지 죄의식이 아니라, 존재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한 가장 순도 높은 인간의 태도다.

결론적으로 「참회록」은 윤동주의 삶과 문학이 만나는 가장 순결한 접점이다. 그는 자기 내부의 어둠을 가장 밝은 언어로 정직하게 써 내려갔고, 그 정직함은 시대의 거울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를 유약하다 말하지만,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도망이 아니라 저항이며, 침묵이 아니라 가장 고결한 외침이었다.

그는 늘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았기에, 누구보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던 청년. 우리는 그가 닦아놓은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 운석 밑을 홀로 걷는 뒷모습을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달빛 아래의 거울 닦기
ㅡ스승과 제자 달삼의 윤동주 〈참회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늦은 오후, 해가 넘어간 청학산 자락에선 고요한 바람 소리만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승은 작은 찻상을 마주하고 앉아 국화차를 따르고 있었고, 제자 달삼은 무릎에 접은 종이를 들고 뭔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스승님,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이요… 읽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밀어주었다.

“솔직히 말해보거라.”

달삼은 손끝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말했다.

“좀… 무거웠어요. 죄송해요. 시가 예쁘지도 않고, 무슨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자꾸만 부끄럽다고만 해서요… 대체 왜 그렇게 자기를 괴롭혔을까 싶었어요.”

스승은 잠시 웃고는 찻잔을 손에 들었다. 그 연한 향이 가을 공기 속에 스며들었다.

“좋은 반응이구나.”

“네?”

“그 말이 곧 네가 시 속으로 들어섰다는 증거다.”

달삼은 갸웃거렸다.

“스승님, 저는 그저 이해가 안 가서요. ‘파란 녹이 낀 거울’이니, ‘발바닥으로 거울을 닦자’니… 저는 아직도 거울에 얼굴만 비춰요. 그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스승은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했다.

“달삼아, 거울이라는 건 얼굴만 비추는 게 아니란다. 어떤 사람은 거울에 주름을 보지만, 어떤 사람은 죄를 보지. 윤동주는 후자였지.”

“죄요?”

“그래.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조차 죄처럼 느꼈던 거야. 부끄럽다고. 그런데 그 부끄러움이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거룩한 고백’이었지.”

달삼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런데요… 그게 꼭 시로까지 써야 하나요? 그냥 속으로 생각하면 안 되나요?”

스승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윤동주는 마음에 부끄러움이 들면, 그걸 종이에 적었단다. 그가 닦은 거울은, 바로 그의 ‘시’였던 거야. 손바닥으로도 닦고, 발바닥으로도 닦고, 그러다 보니 시가 되었지.”

달삼은 물끄러미 거울 하나를 떠올렸다. 오래된 할머니 댁의 작은 거울. 항상 뿌옇고 오래된 그 거울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도 왜 그렇게 닦았는지 몰랐던 순간.

“그럼… 그 거울은 결국 ‘마음’을 비추는 건가요?”

“정확하다. 그래서 윤동주는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고 했지. 오십 장 써봐야 말 한 마디면 끝나는 진실이 있거든.”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그 말, 참 슬펐어요.”

“그건 슬픔의 탄식이 아니라, 정신의 맨살 같은 말이다. 살아온 시간이 부끄러울 만큼 맑게 살고 싶었던 사람의 자책이기도 하지.”

달삼은 무언가를 툭 꺼내듯 물었다.

“스승님은… 참회한 적 있으세요?”

스승은 웃음 짓다가, 다소 진지한 얼굴로 찻잔을 돌렸다.

“수없이. 하지만 윤동주처럼 그렇게 맑게는 못했지. 나는 대체로 ‘합리화’로 넘어갔고, 그는 ‘참회’로 머물렀지.”

“왜 윤동주는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을까요?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말이에요.”

“달삼아, 그게 바로 ‘양심’이다. 모두가 가만히 있는 자리에서도 가슴이 시끄러운 사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쓰는 사람. 그게 윤동주였단다.”

스승은 손가락으로 달빛이 닿은 찻잔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거기, 저기 보이지? 달빛이 머물렀다가 반사되는 그 자리. 윤동주의 시는 딱 그 빛 같아. 작고, 맑고, 조용하지만… 곁에 있는 어둠을 비추는 힘이 있어.”

달삼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요즘,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요. 괜히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나니까, 왠지 좀… 찔려요.”

스승은 빙그레 웃었다.

“그게 바로 윤동주가 원한 거란다. 누가 읽고 ‘아, 아름답다’ 하고 지나치기보다, 속이 좀 쓰라리고, 무언가 자꾸 떠오르게 만드는 것. 그게 시지.”

달삼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저도 오늘부터 거울을 한번 닦아볼까요?”

“손바닥으로 닦다가, 나중엔 발바닥으로도 닦아보아라. 마음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그 말에 둘은 함께 웃었다. 바람이 고요히 찻집 처마를 흔들었다. 그날 밤, 달삼은 방 안 거울 앞에 섰다. 조심스레 수건을 꺼내더니, 먼지를 훔치듯 닦기 시작했다. 얼굴보다 먼저, 거울 속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거울엔 어느 시절 윤동주의 그림자가 지나가듯 스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참회’라는 별빛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 에피소드

윤동주의 『참회록』, 잉크보다 뜨거웠던 양심의 기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1941년 늦겨울, 윤동주는 후쿠오카에서 교토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한 노인의 등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에는 낡은 공책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엔 짧은 문장이 몇 줄 남아 있었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그 문장은 그냥 시의 한 구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윤동주 자신의 24년 삶을 쥐어짜듯 꺼낸 고백이자, 자신을 향한 무언의 재판이었다.

윤동주가 『참회록』을 쓴 정확한 시점은 그의 일본 유학 시기 중간 무렵으로, 도시샤 대학에 진학하고, 더 이상 조선어로 시를 쓸 수 없다는 절망감과 맞물려 있었다. 이미 그는 ‘조선인’으로서 일본 대학의 강의실에 앉아 있었고, 고국의 하늘은 멀기만 했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자기 검열이었다.

도쿄에 사는 한 조선 유학생이 윤동주에게 무심코 말했다.

“윤군, 너 요즘도 시 쓰지? 그런데 그건 어디에 발표할 수 있나? 일본어로는 안 쓰지?”

그 순간, 윤동주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은 조선어를 사랑했지만, 조선어로는 어디에도 시를 발표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일제 당국은 한글 일기조차 문제 삼을 수 있는 시대였다.

그날 밤, 그는 하숙방 다다미 방구석에 앉아, 어둡고 눅눅한 구석 벽에다 이렇게 썼다.

“내 말은 갇혀 있다. 내 시는 종이가 아니라 벽에 새겨진다.”

그가 『참회록』을 쓴 배경엔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닌,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언어’가 있었다. 그것은 시대가 강요한 침묵에 저항하기 위한 가장 정직한 방식이었다.

그 시기, 윤동주는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밤중에 경찰이 하숙집을 급습한 적도 있었다. 그저 같은 하숙집에 독립운동 관련자가 머물렀다는 이유 하나로.

하숙집 주인이 그를 따로 불렀다.

“윤 군, 이제 시 같은 거 쓰지 마. 누군가 보면 ‘조센징이 불온한 글을 쓴다’고 고발할 거야.”

하지만 윤동주는 오히려 그날 밤, 더 깊은 침묵 속에서 펜을 들었다.
그가 시를 쓰는 이유는 명확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참회록』은 바로 그런 증명의 언어였다.
그는 자신을 한 번도 ‘순결하다’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를 가장 먼저 꾸짖었다.
왜 더 용감하지 못했는가. 왜 더 앞에 나서지 못했는가. 왜 더 많은 말을 쓰지 못했는가.

그의 친구 정병욱은 훗날 이런 말을 남겼다.

“동주는 누구보다 조용한 친구였지만, 가장 깊은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다. 다만 그 분노는 외부를 향하기 전에 자기 내면을 먼저 태웠다.”

바로 그 내면의 불꽃이 『참회록』이었다.

그가 도시샤대학 도서관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소는 ‘유리창 앞’이었다.
그는 그 창문을 보며 말했다.

“일본 땅의 하늘은 너무 맑다. 그래서 더 비어 보인다.”

자신은 그 비어있는 하늘 아래에서 부끄럽게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고백했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그 구절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고백마저 부끄럽게 느끼는 순결한 양심’의 탄식이다.
그는 자기 시조차 부끄러워했다. 왜냐하면 그 시가 시대 앞에서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윤동주는 자신이 평생 아꼈던 만년필을 접으며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시를 썼지만, 이제 쓰지 않으려 한다. 다만 마음속에 시를 닦겠다.”

그가 말한 ‘마음속 거울’은 실제로 하숙방에 놓여 있던 낡은 구리거울이었다.
그 거울을 그는 날마다 손바닥으로 닦았다고 한다.

하숙집 주인이 물었다.

“그렇게까지 닦아야 하나요?”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 얼굴이 아니라… 제 마음이 보여야 하니까요.”

그 거울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거울 닦는 마음은 『참회록』이라는 시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윤동주는 죄를 짓지 않은 자였지만, 누구보다 ‘참회’를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가 쓴 가장 위대한 시는, 어쩌면 잉크가 아닌 침묵과 눈물로 적힌 바로 이 한 편이 아닐까.
『참회록』은 그렇게 세상에 드러난 고요한 양심의 불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오늘 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살았느냐.”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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