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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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시인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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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시인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닥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술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천지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을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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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자화상과 서정주의 자화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와 서정주, 두 시인의 「자화상」은 각각의 시인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며, 한국 현대시의 자의식을 상징하는 상징적 시점으로 기능한다. 두 작품 모두 ‘나’라는 존재를 외부의 매개체를 통해 반영하고 성찰하지만, 그 방식과 정서는 극명히 다르다. 이 글에서는 각 시편을 면밀히 분석한 뒤, 두 시인의 세계관과 문학적 태도를 비교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1. 윤동주의 「자화상」 분석
윤동주의 「자화상」은 1940년대의 시대적 어둠 속에서 개인의 양심과 존재를 깊이 성찰하는 고백적 서정시다. ‘논가 외딴 우물’이라는 공간은 세상과 단절된 내면의 장소로, 시인은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자기 성찰을 시작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정적인 자연 묘사를 통해 시인의 내면을 풍경화처럼 투영한다. 우물 속에 비친 달과 구름, 가을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사유와 추억, 감정의 세계이며, 동시에 우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주체와 객체가 모호하게 뒤섞인 ‘내면의 초상화’로 기능한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 인물은 ‘나’이자 ‘타자’이다. 시인은 그를 바라보며 미움과 연민, 그리고 그리움을 교차적으로 느낀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그리워집니다.”
이는 인간 내면의 자기 분열을 섬세하게 포착한 정서적 흐름이다. 윤동주는 스스로를 미워하고, 동시에 가엾어하고, 다시금 그리워한다. 윤리적 민감성과 존재론적 고독이 맞물린 이 복잡한 감정은, ‘윤동주적 자의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기를 ‘비난’하는 자리에 서면서도, 끝내 그 연민에서 떠나지 못한다.
결국 시는 ‘자아와의 화해’를 이끌지 않는다. 다만 그 자아를 끝없이 돌아보는 시선, 그 자체로 존재의 진실함을 증명하고 있다.
2. 서정주의 「자화상」 분석
서정주의 「자화상」은 윤동주의 시와는 정반대의 질감을 지닌다. 이 시는 철저히 현실적이며, 자기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오는 상처와 수치심을 전면에 드러낸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부터 시인은 자신의 출생과 가난, 혈통에 대한 기억을 날 것처럼 드러낸다.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이라는 묘사는,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빈곤과 사회적 열등감을 응축한 이미지다. 이러한 출생의 조건은 시인의 자의식을 조각낸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서정주의 세계에서 부끄러움은 사회적 조건과 원죄처럼 내재된 감정이다. 그러나 윤동주처럼 그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려는 내면적 분투가 아니라, 그는 그것을 껴안고 고백하며 마침내 시적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이 대목은 윤동주의 ‘죄의식’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드러낸다. 서정주는 상처와 부끄러움을 그대로 끌어안으며, 오히려 그것을 시의 진실한 원천으로 전환한다.
“시의 이슬에는 /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이 구절은 시의 본질을 피와 연결시키는 데서, 예술이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실존의 고통 속에서 길어 올린 피와 같은 것임을 암시한다. 그는 병든 수캐처럼 세상을 견디며 왔다고 말하며, 그 고단한 생의 궤적을 자기 시 세계의 본질로 규정한다.
3. 두 시인의 자화상, 무엇이 다른가?
① 정서적 기조와 미학적 태도
윤동주의 시는 도덕적 자기 성찰에 가깝다. 그는 시대적 부조리 속에서도 끝까지 ‘순결한 자아’를 지키려는 영혼의 투쟁을 우물이라는 정적인 상징에 담아낸다. 그의 시는 고요하고, 서정적이며, 사색적이다.
반면 서정주의 시는 운명적 수용과 극복의 서사에 가깝다. 그는 비루한 현실과 유전적 열등의식조차도 시로 끌어안으며, 치열한 자기 폭로를 통해 ‘문학적 형상화’로 승화시킨다. 서정주에게 시는 고백이면서도 선언이며, 존재의 방언이다.
② 자아와 타자의 거리
윤동주는 자기 안의 ‘타인’—우물 속의 사나이—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려 한다. 자기 자신과도 거리를 유지하려는 도덕적 타자화의 태도가 강하다.
서정주는 자기를 타자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속된 곳에서, 가장 치열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그는 외면의 형식을 빌리기보다, 자기 신체와 운명을 그대로 시에 응고시킨다.
③ 시대의식과 문학관
윤동주의 「자화상」은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억압 속에서, 청년의 자의식이 어떤 윤리적 결단과 슬픔으로 채워졌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시 세계는 언제나 조용한 내면의 울림으로 시대와 마주한다.
서정주의 「자화상」은 해방 전후 한국 사회의 계층과 유전적 열등감, 그리고 시인이 나아가고자 했던 문학적 초인의식을 반영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자기 고백이 아닌, 존재의 ‘미학적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4. 윤동주와 서정주 ― 삶의 궤적이 시로 투영된 방식
윤동주 ― “부끄러움이라는 이름의 윤리적 정체성”
윤동주는 연희전문 재학 시절부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언어와 문화의 억압을 받으며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조국의 말이 금지되고, 시인의 언어조차 검열되는 시대에 '말을 아끼고 말의 깊이를 되묻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자화상」은 그런 그의 삶이 투영된 대표작이다.
그에게 있어 ‘자기혐오’는 단순한 패배주의가 아니라, '시대의 어둠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려는 고뇌의 윤리'였다. 그는 순결을 지키고 싶어 했고, 그 순결은 곧 시의 언어였다. 우물 속의 ‘사나이’는 자신의 무력감, 동시에 살아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는 그의 유명한 시구는 『서시』의 일부이지만, 「자화상」에서도 그 윤리적 긴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끄러움은 곧 삶의 태도이며, 그는 그 부끄러움 속에서 시의 순결성을 찾았다.
서정주 ― “운명과 고통을 치열하게 견디는 시적 육체”
반면 서정주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군부 시절까지,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시를 써왔다. 그의 초기 시는 신화적이고 불교적 색채를 띠며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형이상학적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자화상」은 그러한 상징의 껍질을 벗고, 삶의 기원과 체험으로 되돌아간다.
그의 ‘병든 수캐’는 문학적 자의식과 현실의 무게가 교차된 상징이다. 수치와 결핍을 자기 존재의 근간으로 인정하면서도, 그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시에서 보여주는 고백은 오히려 '문학으로 살아남은 자의 선언'에 가깝다.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는 시구는 윤동주의 ‘한 점 부끄럼 없이’와 가장 뚜렷이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는 삶의 죄와 상처마저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껴안으며 ‘그것조차 시의 일부로 만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5. 문학사적 의미 ― 두 자화상이 남긴 유산
윤동주의 「자화상」은 해방 이전의 ‘고요한 저항시’의 전범으로,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청년 지식인의 고뇌를 형상화했다. 한국 현대시는 그의 시로부터 '도덕적 시인의 이상형'을 마련했다.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 짧은 생은 오히려 시의 영혼을 더 오롯이 간직하게 했다.
서정주의 「자화상」은 20세기 한국 시가 어떻게 개인의 출생과 운명, 수치심과 피로부터 자기 서사를 확립하는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실존적이며 미학적인 답을 내리는 시도였다. 물론 그의 생애가 친일 행적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시적으로 그는 ‘한국 시를 한국적으로 썼던’ 대표적 시인이라는 평가 또한 분명하다.
6. 맺으며 ― 두 개의 자화상, 하나의 인간
윤동주와 서정주의 「자화상」은 겉보기에는 대조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 존재의 고통과 마주한 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윤동주는 맑은 우물에 자기를 비춰보며 죄와 순결 사이에서 떨리는 내면을 기록했고, 서정주는 피 섞인 시의 언어로 실존을 할퀴며 세상 앞에 자기를 드러냈다.
한 명은 그리움으로 자기를 되돌아보았고, 또 한 명은 부끄러움으로 자기를 긁어냈다. 한 명은 시의 윤리를 따랐고, 또 한 명은 시의 육체를 썼다. 그러나 결국 이 두 자화상은 모두, ‘시인이 인간을 응시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한국 문학사상 가장 뜨겁고 깊은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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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편의 자화상을 읽는 일은, 단지 시를 읽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윤동주의 우물과 서정주의 호롱불은 지금도 우리 속에서, 각자의 얼굴을 조용히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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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나를 보다
ㅡ스승과 제자 달삼의 자화상 이야기
“스승님, 이 우물 좀 보세요.”
달삼은 책방 앞 우물가에 멈춰 섰다. 연못처럼 깊은 그 우물 속엔 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하늘을 보던 스승이 미소 지었다.
“윤동주가 봤던 것도 저런 우물이었지.”
“아, 그 시 말씀이시군요.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달삼이 읊조리자, 스승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래. 윤동주의 자화상. 그는 자기 자신을 우물 속에서 바라보았지. 거기엔 달이 있고,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어.”
“자기 자신이죠?”
“맞아. 하지만 곧 미워져 돌아서고, 다시 가엾어지고, 그리워지는 사나이. 스스로를 들여다본 청년은 그렇게 자신과 감정의 숨바꼭질을 했단다.”
“그건…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도, 연민하기도 하는 감정인가요?”
“그렇지. 윤동주는 자기 안의 양심과 고독을 투명한 우물에 비추며, 끝내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자신을 마주하려 했어. 시대가 그에게 죄 없는 죄를 씌웠고, 그는 그 죄를 조용히 안고 간 거야.”
달삼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요, 서정주의 자화상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바람과 흙과 병든 수캐까지… 너무 거칠어요.”
“좋은 질문이야. 서정주의 자화상은 말하자면 핏빛 자화상이야. 그는 자신의 출생부터 사회적 열등감, 그리고 존재의 수치를 거침없이 드러냈지.”
“그런데도…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겠다잖아요?”
“그건 반항이라기보단, 현실과 자기 운명을 시의 에너지로 끌어들이겠다는 결기야. 그는 가난하고 지친 육체와, 부끄러운 현실까지 시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어. 그래서 병든 수캐처럼 헐떡이면서도 시의 길을 걸었지.”
달삼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럼 스승님, 윤동주의 자화상은 맑고 고요한 초상화라면, 서정주의 자화상은 거칠고 불안한 초상인가요?”
“아주 근접했구나. 윤동주는 ‘우물’이라는 맑은 거울 속에서 자신을 관찰했지. 그래서 시 속의 자아는 투명하고 조용해. 반면 서정주는 ‘흙벽 호롱불 아래’에서, 진흙처럼 끈적한 기억과 고통 속에서 자기를 끌어냈어.”
“그런데도 둘 다… 자기 자신을 피하지 않네요.”
“맞아. 둘 다 자기를 들여다봐. 하지만 방식이 달라. 윤동주는 조심스럽고 윤리적으로 자신을 바라봐.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정주는 생생한 현실을 끌어안고, 시의 몸통에다 자기 상처를 새긴 거야. 몇 방울의 피를 섞어서.”
달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스승님, 그럼 누구의 자화상이 더 아름다운가요?”
스승은 우물 위에 떨어지는 낙엽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달삼아, 그림은 색이 달라야 멋이 있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슬프도록 투명한 수묵화고, 서정주의 자화상은 생과 피가 묻은 유화야. 둘 다 진실된 그림이지.”
달삼은 가슴이 울컥했다.
“그럼… 우리도 언젠가는 자기 자화상을 그려야겠네요.”
“그렇지. 살아온 대로, 살아낼 대로. 미움도, 그리움도, 부끄러움도 모두 껴안은 나만의 얼굴을. 윤동주처럼 고요하게, 혹은 서정주처럼 뜨겁게.”
스승과 제자는 찻집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늦가을 바람이 책갈피를 넘기고 있었다. 그날 밤, 달삼은 꿈속에서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달이 있었고, 바람이 불었고,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끝내 묻지 않았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만 오래 바라보았다. 우물 속의 얼굴이 부끄럽지 않도록.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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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식 평론가님께 보내는 편지
― 등대국제학교 학생, 육심비 드림
안녕하세요.
저는 등대 국제학교 고등부에 다니는 학생, 육심비입니다.
사실 저는 시를 조금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읽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문학에 관심이 않은 어머님께서 김왕식 평론가님의 글을 추천해 주셔서 윤동주와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속 ‘우물’을 따라 들어갔을 때, 저도 그 안에 저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왜 이렇게 나 자신이 싫을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또 가엾고, 안쓰럽고, 그리워지기도 했던 제 감정이 꼭 그 시랑 닮아 있었어요.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이 구절은 정말 제 일기장 같았어요.
그런데 스승님과 제자 달삼의 대화 형식으로 그 시를 풀어주신 글을 읽으면서, 전 시가 그렇게 재미있고, 살아있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마치 드라마처럼 장면이 떠오르면서, ‘나도 언젠가 내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은… 솔직히 처음엔 좀 거칠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평론가님이 써주신 에피소드, 막걸리를 앞에 두고 “나는 시를 쓰며 구원을 기다린 죄인일 뿐이네”라고 했다는 구절에서, 마음이 멈췄어요.
이 사람은… 부끄러움을 외면한 게 아니라, 그 부끄러움까지 끌어안고 시를 쓴 거였구나 싶었어요.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이 말은 저한테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깨끗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거든요. 근데 그 말 한 줄이, 저를 안아주는 느낌이었어요.
윤동주 시인의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시를 썼다”는 문장도 너무 깊었어요. 그 말이 제 마음에도 쿵 박혔어요.
저도 가끔,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윤동주 시인처럼 그 마음을 시나 글로 써볼 수 있다면, 저도 조금씩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왕식 평론가님의 글을 통해 저는 시를 처음으로 ‘읽은’ 게 아니라 ‘느꼈다’고 말하고 싶어요.
두 시인의 삶과 문장을 사람처럼 소개해 주셔서, 저도 문학이란 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리고 저 같은 학생도, 시를 통해 나를 마주 보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선생님의 글은 단순히 문학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밝혀주는 등불 같아요.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저처럼, 평론가님의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위로받고,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계속 써주세요.
우리 같은 아이들을 위해, 어른이 되어도 잊지 않도록.
2025년 7월 13일
등대 국제학교 고등부 1학년
육심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