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옥 시인의 '바라나시 연꽃, 그 푸른 바람'

김왕식




□ 정근옥 시인






바라나시 연꽃, 그 푸른 바람




시인 정근옥




갠지스 강가의 연기 속으로 흩어지는 종소리,
짐을 진 길손이 머나먼 길을 외로이 걸어간다

진흙 속에 핀 연꽃, 모든 걸 내려놓고 미소 짓는데,
삶과 죽음이 나란히 앉아 올리는 기도 소리

구도의 길 터벅터벅 걸으며 바라보는 저녁 하늘,
갈댓잎 우는 강변에 번뇌의 껍질 벗고 별을 본다

소욕은 흙으로 돌아가고, 구름 위 마음 하나
연잎 흔들던 바람이 다가와 나를 놓아준다




정근옥 시인

문학비평가,
문학박사,
국제펜한국본부 감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자문위원(부이사장), 중앙대인회부화장,
한국문협회원,
서울교원문학회장,
상계고 교장 역임
‘시와 함께’ 주간,
대한교육신문논설위원,
중앙대 교직동문회장,
시집 : ‘수도원 밖의 새들’, ‘인연송’, ‘어머니의 강’ 외,
평론집 ; ‘조지훈 시연구’ 외,
에세이집: ‘행복의 솔밭에서 별을 가꾸다’




비움의 강가에서 별을 가꾸다
― 정근옥 시인의 '바라나시 연꽃, 그 푸른 바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근옥 시인의 시 '바라나시 연꽃, 그 푸른 바람'은

한 편의 시가 어떻게 하나의 철학이자 삶의 경전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깊은 명상시다. 이 시는 단지 바라나시의 풍경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을 빌려 존재와 무상, 그리고 궁극의 해탈을 사유한 시인의 영혼의 순례기다. 그 순례의 중심에는 연꽃이 있고, 연꽃을 흔드는 푸른 바람이 있으며, 시인은 그 바람 앞에 “자신을 놓아준다.”

작품은 인도 갠지스 강가의 상징성과 불교적 미학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사유한다. 갠지스 강변에 스미는 ‘연기 속의 종소리’는 수행자들의 기도 소리이자, 실존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한 조각 울림이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등장하는 ‘짐을 진 길손’은 바로 우리 모두이며, 그 길손은 결국 존재의 무게를 이고 살아가는 인간의 자화상이다.

시인은 단호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 길손을 따라간다. 구도의 여정은 터벅터벅, 고단하지만 멈추지 않으며, 그것은 정근옥 시인이 평생 걸어온 시의 길이기도 하다.

“진흙 속에 핀 연꽃”은 이 시의 중심 은유다. 고통과 어둠의 바닥에서 피어나는 순결함과 평온은, 단지 불교적 교훈이 아니라 작가가 삶에서 체득한 철학이기도 하다.

고교 교장을 지내며 수많은 학생과 교사를 품어온 교육자의 길, ‘수도원 밖의 새들’처럼 세속 속에서 고요함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수행은 그 자체로 연꽃의 생애였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한다. “갈댓잎 우는 강변에 번뇌의 껍질 벗고 별을 본다”는 구절은, 육신의 집착을 벗어난 자만이 볼 수 있는 내면의 별빛을 말한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관조, 빛이 아니라 평온이며, 불꽃이 아니라 정적이다. 시는 외침보다 침묵을 지향하고, 붙들기보다 놓아줌을 택한다. 결국 “연잎 흔들던 바람이 다가와 나를 놓아준다”는 마지막 행은 이 시의 결론이자, 시인의 인생철학이 집약된 진언이다.

정근옥 시인은 이 시 한 편에 자신의 시정신 전체를 응축시켰다. 삶이란 덧없음이며, 존재란 깨달음의 여정이라는 통찰은 그의 모든 시에서 공통되게 흐른다. 『인연송』의 고요한 사랑, 『어머니의 강』에서의 순정한 모성, 『행복의 솔밭에서 별을 가꾸다』에 흐르는 무욕의 정신은 모두 “소욕은 흙으로 돌아가고, 구름 위 마음 하나”라는 이 시의 한 줄에 녹아 있다.

그는 말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통과이며, 통과는 곧 내려놓음이다. 이러한 문학적 미의식은 오랜 교육자로서의 내공과 문학평론가로서의 통찰이 조화를 이루는 데서 비롯된다. 정근옥 시인의 시는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으나, 그 안에 담긴 은유는 깊고 풍요롭다.

'바라나시 연꽃, 그 푸른 바람'은 시인의 내면을 통해 바라나시라는 성지의 본질을 관통한다. 그는 이국의 풍경을 빌려, 실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응시하게 한다. 연꽃과 별, 바람과 흙,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구도자. 그것은 다름 아닌 정근옥 시인 자신의 모습이며, 우리 안의 참모습이기도 하다. 시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메시지는 결국 이렇다.
“놓아주는 순간, 우리는 가장 자유롭다.”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는 내릴수록 눈물이다 ― 임준빈 시인의 생태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