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사마천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주광일 변호사의 국제모의재판 모습 ㅡ 프레스센터





사마천


시인 주광일



그대가 그대의 육신을 거세去勢 당한 순간, 그대는 다시 태어났다. 천형天刑을 숙명으로 달게 받아들이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결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정신을 길러냈다.

그리하여 그대의 마음은 샘물보다 더 맑게 흘렀다.

세상과 담쌓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홀로 견디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역사를 쓰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대의 이름을 남겼다.





정신의 사형틀을 넘어, 영혼의 붓으로 기록한 이름

― 주광일 시인의 '사마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산문시 '사마천'은 단 몇 줄로 문명사의 심장을 꿰뚫는다. 육신의 치욕을 넘은 한 인물의 고결한 영혼, 그리고 그 사연을 끌어안은 시인의 시각은 단순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 너머를 비추는 철학적 조망이다.

이 작품은 단지 사마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헌사에 그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은 인간의 불굴의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향한 시인의 존경과 동일시를 함께 품는다.


시인은 “그대가 그대의 육신을 거세去勢 당한 순간, 그대는 다시 태어났다”라는 문장으로 서사를 열며, 육체의 죽음과 정신의 탄생을 병렬적으로 대비시킨다. '거세'는 단지 물리적 형벌이 아닌, 인간 존엄의 붕괴이자 문명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부정이었다.

그러나 그 절멸의 순간을 시인은 오히려 ‘다시 태어남’으로 새긴다. 이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피어난 새로운 생, 사마천이라는 존재가 육체적 파괴로 인해 비로소 정신의 창조자로 각성한 변증법적 전환이다.


‘천형天刑을 숙명으로 달게 받아들이고’라는 문장에서 드러나는 사유는 단순한 인내의 미화가 아니다. 시인은 사마천이 고통을 감내했다는 사실보다, 그 고통을 숙명으로 인식하고 외려 삶의 사유로 전환시킨 내면의 용기를 포착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광일 시인의 시적 미의식이 발현된다. 그는 인간의 비극을 비극으로만 두지 않고, 치욕을 정신의 정수로 끌어올리는 초월의 시선을 견지한다. 고통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동거하며 그 안에 내면의 빛을 틔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바라보는 인간의 궁극적 가치다.


“그대의 마음은 샘물보다 더 맑게 흘렀다”는 구절은 외상과 치욕의 강을 건너온 사마천의 정신적 맑음을 은유한 대목이다. ‘샘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정화의 상징이다. 사마천의 글은 피의 기록이 아니라, 통곡 속에서 우러난 투명한 진실이었다. 시인은 사마천의 내면을 하늘에 흩뿌려진 별처럼 투명하게 그려내며, 그 글이 어둠 속에서 외려 등불이 되었음을 직관한다.


“세상과 담쌓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홀로 견디고”라는 구절은 시인의 미학이 결코 겉멋이 아닌 뼈저린 현실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준다. 이 담백한 진술은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선택한 고독과 침묵의 무게를 압축하면서, 동시에 주광일 시인의 문학관, 즉 외면당한 진실을 끝까지 붙드는 자세를 반영한다. 이 구절은 사마천이 아니라 주광일 시인의 자화상처럼 읽힌다.

그는 시를 통해 치욕을 견디는 자에게도 생의 존엄이 있음을 말하고, 그 존엄은 말보다 묵묵함에서 비롯됨을 노래한다.


마지막으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역사를 쓰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대의 이름을 남겼다”는 문장은 시인의 존경이 절정에 다다른 선언이다. ‘지워지지 않을 역사’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정신의 탑이며, ‘사라지지 않을 이름’은 존재의 각인이다.

시인은 육체가 지워져도, 정신은 기록을 통해 남는다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곧 자신의 시 쓰기 또한 그러하리라는 확신이며, 바로 여기서 시인의 철학이 빛난다.


주광일 시인의 문학은 고통받은 이들을 향해 진심으로 숙연하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승리자가 아닌 견딘 자다. 그의 시는 승자의 전리품이 아니라, 패자의 눈물 속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정수다. 시조에서 산문시까지, 그는 일관되게 인간의 존엄과 절망의 빛을 추적해 왔다.


이 작품에서 사마천은 단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고난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 애쓰는 자아의 형상이다. 그렇기에 이 시는 독자의 마음속에도 하나의 사마천을 태어나게 한다.

주광일 시인의 문학이 숭고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본질을 믿는 시인의 눈동자에 있다. 그는 역사 속 비명을 오늘의 시로 되살려, 문학의 본래 자리를 복원하고 있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그러므로 단순한 경의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상처를 안은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동행의 말, 그리고 인간 정신의 가장 투명한 강물에 띄운 시인의 내면 그 자체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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