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귀분 시인의 '그 잎새에 닿아'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 안귀분 시인





그 잎새에 닿아



시인 안귀분




한 줄기 생각이,
아침 마음을 창가로 보내네

잎을 두드리고 간 빗줄기는
내게 닿지 못하고 유리에 흐르네

동심을 가슴에 담고 싶은 날
빗방울 떨어진 잎에서 맥박 소리 들려오면

내 심장의 핏방울도
그 잎새에 닿아 하나의 박동이고 싶네

바람에 서로 엉키어 엉키어 구르다가
북극 바람이 가을 맛을 훑고 지나가면

찬 달빛 아래 오색잎 다 떨어지고

예전에 그랬듯이
이별을 습득한 계절 하나.

또 이리로 다가오겠네






심장의 박동으로 잎새에 닿다
― 안귀분 시인의 '그 잎새에 닿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귀분 시인의 시 '그 잎새에 닿아'는 내면과 자연이 교감하는 찰나의 감정을 섬세한 감성으로 길어 올린 서정시의 맑은 결정結晶이다. 일상의 창가에서 출발한 이 시는, 빗방울 하나에 마음을 얹고, 잎새 하나에 기억을 실어 계절과 생의 본질을 사색하는 노정을 보여준다.
이 시는 안 시인의 삶의 철학처럼 소박하고 단정하면서도,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순환을 아름답게 연결 짓는 통찰의 언어로 짜여 있다.

“한 줄기 생각이, 아침 마음을 창가로 보내네”라는 시의 첫 구절은 생각과 마음, 그리고 공간의 이동이 마치 햇살처럼 투명하게 펼쳐지는 장면을 그린다.
안 시인은 삶의 순간을 거창하게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이처럼 조용히 창을 열고, 하루의 감정이 빛처럼 번져가는 장면을 그려낸다. 아침의 정적 속에 '생각'은 시인의 내면이며, 그 내면이 투영된 '창가'는 외부 세계와의 통로가 된다.

“잎을 두드리고 간 빗줄기는 / 내게 닿지 못하고 유리에 흐르네”라는 부분은 시인이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하지만,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빗줄기는 ‘잎’을 거쳐 흐르지만 시인의 몸에는 닿지 않고, 그저 ‘유리’ 위에 남는다.
여기서 ‘유리’는 감정의 장막이며, 현대인의 일상 속 차단된 감각을 은유한다. 시인은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자연과의 교류를 감각의 언어로 갈망하고 있다.

이 작품의 압권은 “빗방울 떨어진 잎에서 맥박 소리 들려오면 / 내 심장의 핏방울도 / 그 잎새에 닿아 하나의 박동이고 싶네”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리듬, 하나의 생명으로 호흡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근원적 염원을 담고 있다. ‘핏방울’과 ‘빗방울’, ‘맥박’과 ‘박동’의 대응 구조는 감각적인 음성유사와 생리적 리듬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내면으로 통하는 생명공동체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안 시인의 시적 미학은 바로 이처럼 미세한 감응의 선율 위에 놓여 있다.

“바람에 서로 엉키어 엉키어 구르다가 / 북극 바람이 가을 맛을 훑고 지나가면”이라는 후반부는 삶의 움직임과 변화에 대한 시인의 깊은 수용 태도를 보여준다. 바람은 뒤엉킨 인연이나 시간이며, 그것이 지나간 후 남겨지는 가을은 '성숙한 이별'의 계절이다. 여기서 북극 바람은 차가운 현실이며, ‘가을 맛’은 삶이 내리는 쓴맛과 달콤함을 함께 품은 무상함이다.

“찬 달빛 아래 오색잎 다 떨어지고 / 예전에 그랬듯이 / 이별을 습득한 계절 하나. / 또 이리로 다가오겠네”라는 결말은 삶의 순환 속에서 이별조차 익숙한 하나의 계절처럼 받아들이는 시인의 삶의 철학을 은유한다. 이별을 '습득'한다는 표현은 이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 배워내고 품는 삶의 자세다. 오색잎이 떨어진 자리, 다시 빈 가지가 되더라도, 시인은 순환을 사랑한다.

안귀분 시인의 작품 미의식은 '자연은 곧 나'라는 심미적 동일성에 기반한다. 그는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내면의 감정선과 절묘하게 연결시켜 독자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동화시킨다.
그의 시는 작은 이미지 하나로 존재 전체를 품는 힘이 있다. 삶의 아픔조차 ‘잎새에 닿는 박동’으로 녹여내며, 계절의 흐름 안에서 이별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섬세한 시적 태도는, 현대의 각박한 삶에 투명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안귀분 시인의 시는 결국 자연과 감정, 생명과 시간, 이별과 기다림이 조화를 이루는 조용한 명상이며, 한 편의 시가 한 생애의 성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요한 미학의 정수精髓다.
그의 시는 크게 외치지 않지만, 외려 그 낮은 목소리 속에 담긴 고요한 울림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 잎새에 닿고 싶은’ 그 마음 하나로, 시인은 오늘도 살아 있음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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