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지하철역 문에 게재된 이오장시인의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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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이오장 시인
물속을 잘 아는 어부와
물길을 잘 아는 어부가
고기잡이에서 돌아올 때면
길목을 잘 찾은
고깃배에서
만선의 붉은 깃발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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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깃발, 삶의 이정표가 되다
― 이오장 시인의 「어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오장 시인의 시 「어부」는 단 여섯 줄, 스물한 단어의 짧은 시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와 상징은 하나의 인생론을 담고 있다. 지하철 문에 실린 이 시는 분주한 도시인의 일상에 한 조각의 물결을 들이우듯, 일상의 지표와 존재의 깊이를 돌아보게 하는 문학적 이정표이다. 시인은 단순한 어부의 모습을 통해 삶의 본질적 태도와 가치, 그리고 성공의 조건을 물길처럼 잔잔하고 묵직하게 전달한다.
‘물속을 잘 아는 어부’는 삶의 내면을 꿰뚫는 통찰의 상징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고기의 서식지, 흐름의 깊이를 감지할 줄 아는 이는 곧 자기 삶의 본질과 감정을 읽어내는 자다. 반면, ‘물길을 잘 아는 어부’는 외부의 흐름, 즉 세상의 조류와 방향, 때와 기회를 아는 사람이다. 이 둘은 서로 보완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지혜의 상징이며, 성공의 조건이 단일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시인은 이 두 어부가 함께 고기잡이에서 돌아오는 장면을 통해 ‘내면의 통찰’과 ‘외면의 감각’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삶에서 참된 결실을 얻는다는 인생철학을 노래하고 있다.
이어지는 “길목을 잘 찾은 / 고깃배에서 / 만선의 붉은 깃발 펄럭인다”는 시의 정점이다. 여기서 ‘길목’은 단지 지리적 위치가 아닌, 인생의 갈림길이며, 선택의 순간이다. 모든 항해는 목적지만큼이나 되돌아오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시인은 이 구절을 통해 삶의 항해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방향감각과 귀환의 지혜임을 말한다. 끝까지 무사히 돌아온 고깃배에서 붉은 깃발이 펄럭인다는 장면은, 치열한 삶의 여정 끝에 도달한 성취의 순간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시적 메타포다. 이 붉은 깃발은 단순한 고기의 양이 아닌, 그 모든 여정을 통과해 온 인내와 지혜, 그리고 귀환의 기쁨을 상징한다.
이오장 시인의 문학 세계는 늘 ‘간결함의 깊이’를 추구한다. 그는 쉽게 쓰되 가볍지 않고, 짧게 표현하되 결코 얕지 않다. 그의 시는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삶의 핵심을 짚으며, 일상과 존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어부」는 그러한 그의 시적 철학이 가장 응축된 형태로 구현된 작품이다.
또한 이 시는 일상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그는 삶을 거창하게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평범한 장면들 속에서 시를 길어 올린다. ‘고깃배’는 노동의 공간이자 인생의 무대이며, ‘붉은 깃발’은 나날 속에서 피어난 축제의 상징이다. 삶의 승리는 떠들썩한 선언이 아니라 조용한 깃발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시인의 미의식이 돋보인다.
지하철 문에서 만난 이 짧은 시는,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속에서 문득 우리 삶의 항해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물속을 보고 있으며, 어떤 물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가. 돌아올 길목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 삶의 깃발은 언제, 어디서 펄럭일 것인가.
이오장 시인은 「어부」를 통해 삶이란 바다 위의 항해임을, 그 항해에 필요한 것은 지혜와 감각, 그리고 끝까지 나아가는 인내임을 조용히 일러준다. 단숨에 읽히는 이 시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이유는, 그 안에 ‘살아가는 자세’라는 불변의 진실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우리 모두의 삶에도 붉은 깃발 하나를 선물해 준다. 펄럭이는 그 깃발이야말로, 시인의 시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아름다운 시적 위로이자 응원이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