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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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칼날이 법보다 무서운 시대를 살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오늘날은 지혜가 넘치는 시대가 아니다. 외려 ‘지혜를 흉내 낸 계산’이 정점을 찍은 시대다. 예전엔 진심 어린 조언 한마디에 세상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말에 흥정을 붙이고, 표정에 전략을 달아야 사람 하나를 움직일 수 있다. 말 한마디가 문장을 삼키고, 그 문장이 사람을 베는 시대,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워 보이는 사람’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야 겨우 찾아낸 해답을, 오늘날 한 사람이 단숨에 꿰뚫는다. 그러나 이는 깊이의 문제가 아니다. 표면을 가르는 속도의 문제다. 수면 아래는 고요한데, 위에선 회오리처럼 재치가 흐른다. 그 재치는 지혜의 눈동자가 아니라, 생존의 잔머리에서 비롯된다. 말의 허리춤엔 진심이 없다. 거기엔 오직 ‘내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술만이 칼처럼 매달려 있다.
한 사람을 설득하는 데 민중을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현대인은 마음을 닫는 법을 배웠고, 듣는 척하는 연기에 능하다. 그러니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선, 만인을 설득할 수 있는 인내와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말의 초점을 잃으면, 상대는 입꼬리만 움직이고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다시 ‘지혜’를 묻는다. 그것은 차라리 잃어버린 것의 이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길을 잃은 이유를 묻는 대신, 길을 밝히는 언어를 다시 길어 올려야 한다. 지혜는 꾸며낸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 속에서 마모되고 깎여도 꺾이지 않는 말이다. 찻잔 속 뜨거운 물이 시간이 지나도 천천히 식듯, 진짜 지혜는 늘 뜨겁지만 조용히 식는다.
이제 말의 시대는 지나고, 의미의 시대가 다시 오기를 바란다. 그렇게 다시 한 사람의 진심이, 일곱 사람의 꾀보다 깊게 가닿기를.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