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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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 자우旱天慈雨, 간절함이 부른 자비의 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물었다. 하늘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고, 땅은 그 입마름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들판은 목말라 몸을 뒤틀었고, 논바닥은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졌다. 사람들은 한낮의 태양을 원망하며, 마치 속죄라도 하듯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땀을 훔쳤다. 누군가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이러다간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네.”
그 말에 진심이 담겼던 걸까.
산 너머 마을 어귀에선 몇몇 마을 어른들이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 누군가 묻는다. “정말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긴 오나요?” 대답은 간단하다.
"비가 올 때까지 지내면 된다'
간절함이란 결국 인내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던 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의 눈이 하늘로 쏠렸다. 무심하던 하늘이 흐려지고 있었다. 구름이 뭉게뭉게 밀려오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더니, 톡, 톡… 대지 위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약속이 지켜지는 듯, 첫 방울이 닿는 순간, 나뭇잎이 몸을 움찔했고, 먼지가 피어오르던 흙바닥은 조용히 들숨을 쉬었다.
그것은 한 줄기 자우(慈雨), 자비로운 비였다. 하늘이 내린 응답이자, 사람이 부른 기적. 기우제의 효험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깊은 기도가 하늘을 움직였던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세상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푸석하던 잎사귀는 제 빛깔을 되찾았고, 바싹 타들어가던 마음의 가장자리에도 잔물결 하나가 스며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참 사람 마음이란 간사한 법이다. “이젠 또 너무 와서 장마 피해가 걱정이네.”
막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땐 하늘에 감읍하던 이들이, 사흘 지나지 않아선 양동이에 물 차오르듯 불평을 담는다. 어제는 가뭄이 걱정이고, 오늘은 장마가 걱정이다. 기우제는 간절함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는 또 다른 염려로 되돌아온다.
허나, 어쩌랴, 비는 사람의 맘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오는 데로 오고, 필요한 곳에 닿을 뿐이다. 그 자비는 따지지 않고 적시며, 그 은혜는 계산 없이 젖게 한다. 마치 사랑처럼.
그날 내 창가에도 비가 내렸다. 빗소리는 마음을 두드리는 손길 같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불현듯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장독대에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여름밤. 그 소리는 두려움도, 외로움도, 모든 갈라짐을 덮어주는 작은 이불 같았다.
지금 내 마음에도 그 빗소리가 덮여든다. 단단하게 갈라져 있던 생각들이 부드러워지고, 찌든 감정의 껍질이 서서히 벗겨진다. 사람도 땅처럼 마르기도 하고, 물들기도 하는 존재라는 걸, 그때의 비가, 그리고 지금의 비가 가르쳐준다.
한천 자우旱天慈雨. 그것은 단지 날씨의 변화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삶에 찾아든 작은 기적이며, 가슴에 내려앉은 따뜻한 손이다. 간절한 누군가의 기도가 닿아야만 내리는 비, 하지만 또 어떤 날엔, 아무 이유 없이 조용히 찾아오는 비. 그런 비를 사람들은 ‘자우慈雨’라 부른다.
오늘, 나는 마음속에 작은 기우제를 올린다. 바람결이 스치고, 생각의 들녘이 메말랐던 어느 여름날, 그 고요한 기다림 위에 내리는 비처럼, 누군가의 가슴에도 자우 한 줄기, 은밀히 내려앉기를.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이제 다시 웃어도 된다. 다시 살아도 좋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