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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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김왕식
말하지 않아도 스며드는 마음이 있다
비 오는 날, 나무는
젖은 어깨로 세상을 끌어안는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그 사람의 고요는 더 깊어지고
입술 끝에 머문 침묵은
빛보다 조용히 마음을 건넌다
가벼운 말이 스쳐간 자리엔
찢긴 꽃잎과 흩어진 온기가 남고
묵묵한 기다림은
그 꽃잎을 주워
햇살로 다시 피워 올린다
숨죽여 삼킨 한마디가
오랜 시간 돌아와
어떤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힌다
가장 조용한 말은
멀리 있는 사람의 밤을 밝히고
아무 말 없이 건넨 눈빛은
혼잣말보다 더 많은 진심을 담는다
달빛은 소리 없이 창을 열고
고개 끄덕이는 이마 위로
세상이 천천히 기댄다
어설픈 위로는 금 간 벽을 흔들지만
말 없는 손등 하나가
닫힌 마음의 문을 조용히 두드린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며
그 침묵은 어느 이름보다 단단한 사랑이다
오늘도 나는
말없이 누군가를 품는다
한 줌의 체온만으로
세상을 쓰다듬듯 그를 향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가장 조용한 언어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