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이근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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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시인 이근모
시베리아 북풍한설 내 핏줄을 얼게 해도
해오름달이나 매듭달이나 언제나 멈춤 없이
흘러, 흘러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핏줄은 얼지 않았는데 마음이 얼었습니다
천 년의 바람과 천 년의 구름이 자리한 하늘 아래
혈의 정체성을 찾아 대를 이은 혼불이 광야를 누볐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산천
나의 세포 되어 마음 구석구석 자리 틀고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는 혈맥으로
백두까지 한라까지 뻗을 수 있기를 염원하였습니다
하얀 순백의 옥양목에 떨어뜨린 쪽물처럼
그 혈흔, 시베리아 벌판에 점을 찍고
한민족 영혼으로 승화해 왔습니다
아~
나의 조국!
늘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무엇이라 부릅니까?
왜 나는 당신의 혈맥 바깥처럼 존재해야 합니까?
내 핏줄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누구의 모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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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과 혼불로 쓴 유민의 시학
— 이근모 시인의 '고려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근모 시인의 시 '고려인'은 단순한 디아스포라Diaspora의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핏줄의 언어, 얼어붙은 마음의 기록이며, 그 안에서 되살아나는 조국이라는 뿌리의 절규다. 시인은 강제 이주와 유랑의 역사 속에서 시베리아 벌판에 뿌리내린 고려인의 삶을 하나의 민족혼으로 승화시킨다. 이 시는 단지 시적 기록을 넘어, 시대의 비극과 조국의 무관심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이다.
1연에서 시인은 “시베리아 북풍한설 내 핏줄을 얼게 해도”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한다. 육체를 위협하는 자연의 냉혹함 속에서도 “흘러, 흘러 여기 있습니다”라며 존재의 끈질김을 강조한다. 해오름달, 매듭달—조상의 달력으로 시간의 흐름을 말하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내면에 스며 있다.
2연은 아버지를 부르며 얼어붙은 마음을 고백한다. “핏줄은 얼지 않았는데 마음이 얼었습니다”라는 역설은 조국의 부재, 뿌리의 상실에서 비롯된 깊은 고독과 소외를 담고 있다. “대를 이은 혼불”은 민족적 자긍심의 불씨이며, “광야”는 경계 너머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고려인의 방황을 의미한다.
3연은 시인의 미의식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산천”이 “나의 세포 되어” 자리 잡고 있다는 표현은 조국 산하가 단지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몸의 일부, 혼의 일부로 내면화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백두까지 한라까지 뻗을 수 있기를 염원”했다는 말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과 자신들의 민족적 귀환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다.
4연에서 “하얀 순백의 옥양목에 떨어뜨린 쪽물”은 정결한 민족정신에 새겨진 이주의 흔적이며, “그 혈흔”은 고통을 통한 정체성의 각인을 뜻한다. 그것은 곧 “한민족 영혼으로 승화”되어, 억압받은 역사조차 예술과 민족의 정신으로 재탄생하는 미학적 장치가 된다.
마지막 5연은 외침이다. “아~ 나의 조국!”으로 시작된 탄식은 실은 사랑의 호명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단절된 사랑이며, “왜 나는 당신의 혈맥 바깥처럼 존재해야 합니까?”라는 절절한 질문은 조국의 무관심, 혹은 역사적 외면에 대한 비판이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누구의 모어입니까?”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인의 문학관, 즉 언어는 단순한 전달 도구가 아닌 정체성의 근원이자 존재의 본질임을 웅변한다.
이근모 시인의 '고려인'은 단지 이산민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견디고 기억하며, 예술로 승화하려는 시인의 윤리와 철학이 담긴 기념비적 작품이다. 고통을 기록하되 비탄으로 빠지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의 뿌리를 되묻는 이 시는, 문학이 어떻게 역사적 부재를 초월하여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 하겠다. 피의 언어로 얼어붙은 혼을 녹이는 그의 시는, 결국 조국과 인간에 대한 가장 순수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이것이야말로 유랑하는 고려인의 시적 귀향이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