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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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말보다 먼저 마음에 도착한다
시인 김왕식
사람과 사람 사이엔
말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문장이 분다
눈빛 끝에서 피어난 바람 하나
묻지 않고
캐묻지 않고
고요히 마음의 문을 연다
무심한 말 한 줄이
가슴에 돌멩이처럼 얹히면
침묵은 한없이 무거워지고
잊힌 약속은
그림자처럼 눌러앉는다
노승은 말했다
“가슴에 두지 말고
내려놓으라”라고
섬돌 위
고무신 물어뜯은 절 강아지
발길질 한 번에
그 말조차
바람 앞에서 무색해진다
자신조차 내려놓지 못한 삶을
어찌 경전처럼
차분히 펼 수 있으랴
바람은 묻지 않는다
그저 스친다
눈물 위로
다문 오해 위로
풀지 못한 매듭 하나 위로
바람은 말이 없다
그래서 더 멀리
그래서 더 깊이
닿는다
문학도 그러해야 한다
논리보다 결로
설명보다 여백으로
허물진 마음마다
연민의 숨결로
조용히 스며야 한다
말로 닿지 못하는 곳까지
침묵은 가 닿는다
한 줄의 문장은
바람처럼
멀고도 가까워야 한다
이해보다 기다림으로
용서보다 머묾으로
바람은 말보다 먼저
누군가의 가슴에 도착한다
말하지 않아도
울림이 되어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