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시 '장미꽃밭에서'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장미꽃밭에서





시인 주광일




6월의 장미꽃밭에서
나는 황홀하지 않았어요.
그다지 즐겁지도 않았어요.
꿈쩍하지 않는 것 같은 바람 속에서
핏빛 꽃잎들이 소리 없이 탄식하고 있고
꽃밭 너머 거짓과 광기에 매몰된 세상엔
어둠의 세월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낯선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아주 오랫동안
하늘을 마셨어요.
그 덕분에 나는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장미꽃밭을 벗어날 수가 있었어요.






주광일 시인의 시 '장미꽃밭에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시 '장미꽃밭에서'는 아름다움의 전형이라 불리는 장미를 배경으로 하되, 그 아름다움조차 감싸지 못한 시대의 불안과 내면의 고통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시인의 의식을 담담히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는 장미의 화려함 뒤에 숨은 현실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으며, 외려 그 어둠 속에서 진실한 구원의 가능성을 '하늘'이라는 상징을 통해 발견하는 구도적 노정이다.

6월, 장미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

시인은 “나는 황홀하지 않았어요”라고 단호하게 고백하며 시작한다.
이는 관습적으로 기대되는 감정의 반전을 통해, 시적 자아가 현실의 고통 앞에서 감상보다 각성을 선택했음을 명확히 한다. 화려한 장미꽃이 만발한 자리에서조차 느껴지지 않는 기쁨은, 단지 개인의 우울이 아니라, 그 너머의 ‘거짓과 광기에 매몰된 세상’을 의식한 결과이다.

핏빛 꽃잎의 '소리 없는 탄식'은 환희의 이미지가 아닌, 시대의 침묵과 고통을 함축한다. 이는 단지 장미의 의인화가 아니라,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의 얼굴이 얼마나 왜곡되고 절망적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어둠의 세월'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역사와 시대정신의 고여 있는 물, 즉 침묵된 진실, 사라진 정의, 무감각해진 인간의 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시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광일 시인의 시세계는 언제나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는 서정의 철학 위에 놓여 있다.
“낯선 하늘을 쳐다보았어요”는 무력한 현실을 벗어나는 첫 전환점이다. 하늘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시간과 관념, 인간의 내면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존재적 공간이다.
그 하늘을 마셨다는 표현은, 육체의 숨이 아닌 정신의 호흡이며, 세계의 거짓을 씻어내는 정화의 은유이다.

이러한 '하늘 마시기'는 명백한 시인의 구도적 자세이며,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고 진실과 생명의 본질로 회귀하려는 내적 실천의 모습이다.
시인은 결국 그 하늘 덕분에 절망에 무너지지 않았고, 장미꽃밭을 — 곧 거짓된 아름다움, 위선의 세계 — 벗어나게 된다.

주광일 시인의 삶의 철학은 늘 현실 인식과 영혼의 해방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 한다.

그의 시는 늘 ‘눈 뜨고 보기 힘든 세계’에 대한 진실한 고백이자, 그럼에도 끝내 인간의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의 기록이다. 그는 시를 통해 말하지 않고, 삶으로 시를 증명하려는 구도자에 가깝다.
이 시 또한, 장미꽃밭이라는 환상의 배경 안에서도 진실의 눈을 감지 않는 시인의 내면 윤리와 문학적 자세가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장미꽃밭에서'는 아름다움의 가면을 벗기고, 그 너머의 침묵과 탄식을 꿰뚫은 시적 투시력의 결정체다. 동시에, 시인은 하늘을 마심으로써 그 어둠을 무력하게 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새롭게 호흡한다. 이것이야말로, 주광일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윤리요, 인간다움의 방식이며, 우리가 끝내 이 세계를 건너가는 희망의 길이다.



ㅡ 청람 김왕식


□ 주광일 변호사의 국제모의재판모습 ㅡ프레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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