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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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아래 꺼내든 마음의 우산
자연인 안최호
장맛비가 대지를 삼키듯 내렸다. 그 빗방울은 잠시의 서정이 아니었다. 마치 하늘이 오래 품었던 울음을 쏟아내듯, 골짜기마다 퍼붓고, 지붕마다 두드리며, 들숨과 날숨의 리듬마저 휘청이게 했다. 청람루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때 고요하고 단정하던 마당은 흙탕물의 늪이 되었고, 그 안에서 생명들은 작게 떨고 있었다.
닭장은 이미 물에 잠겨, 병아리들의 보드라운 털은 젖은 솜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엔 쪼르르 모여 돌아다니며 재잘대던 생명이, 오늘은 구석에서 한 몸으로 모여 한기와 두려움에 숨죽이고 있었다. 푸르른 눈동자를 가진 강아지는 어느새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어쩌면 땅강아지라 해도 믿을 만큼, 본디 색을 잃은 채, 웅크리고 울고 있었다. 자주 웃음 짓던 눈망울엔 슬픔의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가슴에도 똑같은 빗물이 고여 갔다.
텃밭은 더 말이 없었다. 푸릇푸릇 올라오던 고추와 토마토, 열무와 상추는 쓰러졌고, 그 뿌리마저 땅속의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채 마르지 못한 농부의 손길이 모종 하나하나를 일으켜 세웠던 정성은, 이제 물결 위에 던져진 듯 허공을 맴돌았다. 그것은 단지 작물의 피해가 아니었다. 삶의 리듬이 한순간 어그러진, 자연의 무심함 앞에 놓인 인간의 침묵이었다.
그러나 청람루는 울지 않는다. 그곳은 오래도록 생명을 품어온 마당이었고, 햇볕을 마중 나가듯 풀잎 하나에도 인사를 건네던 뜰이었다. 병아리의 떨림은 곧 다시 바람 속을 뛰어다닐 생동의 예고이며, 강아지의 진흙 범벅은 한때의 추억으로 씻겨질 풍경이 될 것이다. 텃밭의 상처 또한, 뿌리가 살아 있다면 다시 연둣빛 희망으로 피어날 것이다.
장맛비는 청람루에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통해 삶의 깊이를 일깨워준다. 우리는 때로 손끝으로 지켜온 작은 것들이 얼마나 연약했는지를, 또 그것을 돌보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이렇게 땅이 젖고 하늘이 울어야 비로소 알게 된다. 슬픔은 그저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의 문턱이자,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오늘 청람루는 조용히 물기를 머금고 있다. 빗물이 스민 뜰에서, 바람은 조심스레 지나가고, 병아리는 몸을 털며 작게 소리를 낸다. 강아지는 눈을 마주치며 꼬리를 흔든다. 텃밭은 비록 폐허 같지만, 그 사이로 다시 연둣빛 꿈이 움튼다.
장맛비는 지나간다. 그러나 이 빗속에서 피어난 연민과 사랑, 생명의 회복을 위한 마음의 우산은, 더 오래 청람루의 하늘 아래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고요한 재난 앞에, 사람은 더욱 깊은 마음으로 자연과 생명을 품는다. 그것이 청람루의 품격이자,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자연인 안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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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우는 자, 생명과 함께 웃는 안최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 작가의 산문 「장맛비 아래 꺼내든 마음의 우산」은 단순한 자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 입은 풍경을 껴안고, 그 안에 깃든 생명의 떨림을 귀 기울여 듣는 한 존재의 깊은 성찰이며, 자연과 생명의 숨결에 공명하는 시적 고백이다. 그의 글은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젖은 병아리의 떨림, 진흙 속 강아지의 눈빛, 쓰러진 텃밭의 숨결 속에서 꺼내는 조용한 울음과 회복의 서사이다.
작가 안최호는 ‘청람루’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만의 문학적 미의식을 정제해 왔다. 청람루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되묻게 하는 영혼의 무대이며, 그의 글들은 그 무대에서 빚어진 성찰의 기록이다. 이번 산문에서 드러난 작가의 미의식은 ‘생명을 향한 깊은 연민’, ‘시간과 존재를 관통하는 인내’,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동행하는 삶의 윤리’로 요약된다.
“장맛비가 대지를 삼키듯 내렸다”는 첫 문장은 이 글의 서정적 파고를 단박에 드러낸다. 여기서의 비는 자연의 분노나 재난이 아니라, 오래도록 참았던 생명의 울음이다. 작가는 그 울음 속으로 들어간다. 병아리의 젖은 솜털, 땅강아지가 된 강아지, 그리고 무너진 텃밭까지… 이 모든 것은 단지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이 머문 ‘생명’이다. 그는 생명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생명의 자리로 자신을 옮겨, 함께 젖고, 함께 웅크리며, 함께 숨을 고른다. 바로 그 지점에서 안최호 문학의 품격이 솟아오른다.
특히 “삶의 리듬이 한순간 어그러진 자연의 무심함 앞에 놓인 인간의 침묵”이라는 구절은 작가의 존재론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명문이다. 그는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자연 앞에서 침묵하는 인간의 자세를 취한다. 이 침묵은 포기나 체념이 아닌, 자연의 리듬을 따라 함께 고요해지는 내면의 울림이다. 이는 곧 작가가 추구하는 ‘비움의 철학’이며, 인간 중심의 관점을 넘어서 생명의 윤리에 이르는 길이다.
안최호의 작품 세계는 항상 되살아나는 희망의 윤리로 귀결된다. “텃밭의 상처 또한, 뿌리가 살아 있다면 다시 연둣빛 희망으로 피어날 것”이라는 문장은 그의 철학을 가장 선명히 보여준다. 작가에게 희망은 환상이 아니라, 상처의 자리에서 솟아나는 진실한 에너지이다.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는 생명, 젖었지만 털고 일어서는 병아리, 침묵하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리는 자연의 얼굴.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마음의 우산'이며,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문학적 감각이다.
요컨대, 안최호의 산문은 단순한 수필을 넘어선 한 편의 생명철학이며, 고요하지만 단단한 시적 사유로 완성된 생존의 기록이다. 그는 말의 화려함보다 마음의 진실을 택하며, 자연과 인간 사이에 무너진 다리를 다시 놓는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비 내리는 날, 젖은 땅에 우산 하나 씌워주는 일과 같다. 그래서 안최호의 글은 위로가 아니라 동행이다. 그는 독자와 함께 젖고, 함께 바라보고, 결국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이것이 곧, 작가 안최호의 삶의 가치요, 그 문학이 지닌 진실된 미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청람루’라는 이름처럼, 푸른 물결 위에 맑은 글 하나 띄우는 일이다. 그 물결은 오늘도 고요히 흐르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 자연인 안최호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